풀이 도둑 되어 방에 들어오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24)

* 풀이 도둑 되어 방에 들어오다 *



두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밖에 나갔던 아내가 들어와 거실을 보더니 대뜸 한 마디 한다.

"당신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옷을 안 털었지요?" 하는 말에 바닥을 보니 '아차!' 했다. 도둑놈풀에서 떨어진 바늘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게 아닌가. 무슨 소리 더 나오기 전에 옷을 재빨리 집어 들다 갑자기 든 생각에 화들짝 놀라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젖혔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도 몇 개 떨어져 있었다.

거실 바닥에 있는 거야 나중에 치워도 되지만 낮잠 자느라 떨어뜨린 이불속의 도깨비바늘은 그냥 놔뒀다간 잠잘 때 속옷을 뚫고 들어올 수 있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아내가 그냥 지나치랴.

"자~알 한다. 내가 그만큼 밭일하다 집에 들어올 때는 현관 앞에서 팍팍 털고 들어오라고 했건만..."

사실 변명하려면 할 수 있으나 구차한 듯해 입을 다물었다.


(도깨비바늘꽃)


우리가 흔히 '도둑놈풀'이라 하는 종류에는 '도깨비바늘풀', '도꼬마리풀', '도둑놈의갈고리', '도둑놈의지팡이' ‘쇠무릎’ 등 꽤 된다. 이들의 특징은 옷에 스치기만 해도 착 달라붙어 떼 내지 않으면 안방까지 무사통과니 "도둑놈"이란 소릴 듣기 딱 좋다.

이번에 일 저지른 녀석은 '도깨비바늘'이다. 도둑놈풀 가운데서도 가장 악질(?)이다. 사실 달라붙는 양으로야 쇠무릎이 훨씬 더 많지만 피해 정도는 얕으니까. 게다가 다른 도둑놈풀들에 비해 도깨비바늘은 지금 잘 영글어 사람이나 야생동물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이 녀석은 번식력 또한 으뜸이니 잠시라도 풀밭에 들어가면 달라붙는다.


위에 든 풀들이 모두 '도둑놈풀'이란 악명이 붙었지만 이들을 보면서 지금의 코로나19 시대를 생각한다. 흔히 '강한 놈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하는데, 요즘은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는 말로 바뀌었다. 그만큼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라고 할 때 도둑놈풀보다 거기에 딱 들어맞는 녀석들도 없으리라. 그 녀석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녀석들을 퍼뜨리는 주인공이 사람 아니면 야생동물이다. 스치기만 하면 결사적으로 달라붙으니까. 즉 피해를 입는 당사자가 가장 혜택 베푼 경우가 된다.


(도깨비바늘의 미늘)


그런데 가만 보자, 도둑놈풀은 예전부터 비난받았을까? 결론은 아니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엔 약성 좋은 풀로 소개돼 있다. 한 예로 도꼬마리풀은 그 열매를 '창이자(倉耳子)'라 하여 치풍 · 평산제 · 거풍 · 두통 등에 사용하고, 민간에서는 감기 · 두통에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들어 술에 타서 복용했다고 한다.

도깨비바늘의 줄기와 잎은 약용하거나 식용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줄기와 잎은 생즙을 내어 벌레에 쏘였을 때나 상처에 바르는 약으로 쓰인다. 쇠무릎(우슬)은 워낙 무릎 즉 관절에 좋다고 소문 나 있는 데다, 부인의 생리를 정상으로 유도하고 이뇨와 배변을 용이하게 한다고 돼 있다.



살기 힘든 세상이다 보니 좋은 말이 쏟아진다. '위기가 기회다'는 말도 거기 속한다. 지금 다들 견디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만큼 위기다. 나처럼 산골 사는 백수가 힘들다면 생활 일선에서 뛰고 있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사회학자들은 역사를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습속이 몇 년 전과 비교해 봐도 많이 바뀌었다. 마스크를 쓰고 일하며, 마스크를 쓰고 공부하며, 예식장엔 아주 가까운 소수만 초대하며,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코로나 시절에 초안 잡아 쓴 글)

그래서 학자들은 이때야 말로 '혁신(革新)'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혁신이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다'는 뜻이다. 혁신이란 말이 이제 등장한 건 아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하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을 했으니 거의 30년 전부터 나온 말이다.


(도꼬마리풀)


그리고 '제21회 세계지식포럼'에 참가한 로버트 러블레이스 캐피털그룹 공동 회장은, "맥도널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경기침체기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스타벅스 등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 설립됐다"며 척박한 시기일수록 더 강한 기업이 출현했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역사는 혁신적인 기업은 살아남을 길을 찾으며 심지어 변동성 높은 시장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번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음을 보여줬다"라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2020년 9월 18일)


혁신은 소위 도깨비바늘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 처음 녀석의 바늘은 말 그대로 바늘이었다. 그때도 동물에 달라붙었지만 이내 떨어졌다. 그냥 바늘이었으니까. 그 뒤 어느 시점에 바늘에 '미늘'을 달았다. 즉 낚시 바늘처럼 걸리면 빠지지 않는 장치를 단 셈이다. 그것도 미늘을 수십 개나 장착한.

이런 혁신을 통해 도깨비바늘의 앞날은 탄탄대로라 곧 산과 들을 정복할 정도가 되었다. 내 옷에 붙어 도둑놈처럼 몰래 안방까지 침범한 도깨비바늘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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