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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36)

제436편 : 조동화 시조시인의 '떨켜에 관하여'

@. 오늘은 조동화 시조시인의 시조를 배달합니다.


떨켜에 관하여
조동화

지혜가 나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날 엄마가 떠나간 그날부터
절망의 이파리를 지워
나를 지킨 떨켜들

한다는 사람도 제 무게로 저를 죄고
더러는 나락에다 스스로를 팽개치지만
끝끝내 희망을 사수한
내 마음의 방패들
- [시조21](2013년 겨울호)

#. 조동화 시조시인(1948년생) : 경북 구미 출신으로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경주문화고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후 목회자가 되어 '경주성경침례교회' 목사로 재직 중이며 [시조21] 편집위원이기도 함.




<함께 나누기>

제가 배달하는 시조를 여러 해 동안 읽어보셨으니 위 시가 시조임을 퍼뜩 알아챘을 겁니다. 각 연 4행을 3행에 이어쓰면 고시조 율격과 같으니까요.
그러니까 오늘 시조는 현대시조가 지향하는 현란한 구성 형태가 아닌 고시조 율격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주제 담은 그릇이 고시조 정도이겠구나 하면 안 됩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의 주제가 웅숭깊습니다.

우선 이 시조를 이해하려면 ‘떨켜'란 용어부터 알아야 하겠지요. 마침 요즘 계절이 떨켜와 직접 관련 있으니까요. ‘떨켜’는 낙엽이 질 무렵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생기는 특수한 세포층을 가리키는데, 이 떨켜가 떨어지면 낙엽이 되고 그래야 식물은 겨울을 나게 됩니다.

"지혜가 나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 어린 날 엄마가 떠나간 그날부터 / 절망의 이파리를 지워 나를 지킨 떨켜들"

화자가 어릴 때 엄마가 떠나셨다는 표현은 진짜 화자의 어머니가 하늘로 가셨다거나 또는 버리고 가셨다는 의미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닙니다. 중요한 지점은 그렇게 홀로 남았을 때 나를 지켜준 존재는 바로 삶의 뜰케라는 말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파리'는 절망이라는 나무에 달린 여러 종류의 고통을 상징하는데, 이게 내내 달려있다면 나는 절망을 극복 못하고 어둠 속을 헤맸을 겁니다. 이럴 때 다행히 떨켜가 있어 나는 이겨내었습니다. 만약 떨켜가 떨어져 나가지 않고 계속 붙어 있었다면... 아찔합니다.

'절망과 불행을 이겨내는 한 방법은 그것을 잊어버림에 있다'라고 한 정신과 의사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니까 잊어야 할 건 잊어야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떨켜는 '스스로 일어나려는 의지', '아프면서 배우는 성숙한 자세', '부딪칠수록 단단해지는 마음가짐'을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떨켜가 있어서 식물이 다음해 봄에 새싹을 돋울 수 있는 것처럼 화자도 아픔, 슬픔, 불행, 절망을 딛고 그렇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화자에게 어머니가 성장기 내내 계속 계셨듸라면 삶은 편했을지 몰라도 강인함은 기르지 못했을 겁니다. (아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청소년기에 엄마 없는 시련을 겪어 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한다는 사람도 제 무게로 저를 죄고 / 더러는 나락에다 스스로를 팽개치지만 / 끝끝내 희망을 사수한 내 마음의 방패들"

봄에 싹과 잎이 돋고, 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달았다가 겨울이 오면 자연스럽게 다 떨어집니다. 이 이치는 자연계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도 피할 수 없습니다. 단지 '잎이 떨어지다'는 말 대신 '이별'이란 말로 대신할 뿐.
시인은 나뭇잎이 떨어져야 새로운 생명이 움틀 수 있듯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떠나보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다시 만남을 이끄는 계기일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욱 성숙해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 첫째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발견한 사진 둘을 합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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