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33)
며칠 전 올 겨울 들어 가장 기온이 떨어진 날 아침, 늘 해오던 ‘마을 한 바퀴’를 돌까 말까 망설이다가 길을 나섰습니다. 며칠 전 코로나 백신 ‘부스트 샷’을 맞고 난 뒤 후유증으로 몸살이 와 사흘간 걷지 않고 넷플릭스만 보느라 누웠더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기에.
새벽엔 영하 10°까지 떨어졌다던데 길을 나서면서 기둥에 걸린 온도계를 보니 영하 5°, 체감 온도는 더 낮게 느껴졌습니다. 마을회관을 지나 구(舊) 이장님 댁과 (前) 이장님 댁을 지나면 아랫마을 펜션이 나올 때까진 집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 이장님 댁을 막 지나칠 때 길바닥에 뭔가 희끄무레한 게 보였습니다. 처음엔 나뭇가지가 부러져 떨어진 걸로 알았습니다. 가까이 가서야 세상에! 뱀입니다! 뱀 한 마리가 뻗어 있습니다. 뱀이라니요? 지금 이 계절에 뱀이라니요?
아시다시피 한겨울 내내 뱀은 긴 겨울잠에 빠져듭니다. 그러려면 가을 즉 10월 중순부터 땅속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가끔 11월 중순에도 보이니 그때까지 나다닐 수 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영하로 떨어진 적 제법 되니 이미 땅속에 들어가 있어야 할 녀석입니다.
그런데 아직 들어가지 않고 있다가 길바닥에 죽어 있다니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혹 차에 치었나 하여 보니 바퀴에 눌린 자국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 궁금하여 뒤집어 보았습니다.
역시 없었습니다. 다만 배 쪽으로 나뭇가지나 쇠붙이 같이 날카로운 물체에 긁힌 흔적만 있을 뿐. 이제 한 가지 차에 치어 죽은 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아마도 배 부분 상처가 죽은 직접 원인이 되겠지요.
그때부터 한 시간 가까이 걸으며 이 뱀 한 마리의 죽음을 두고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왜 지금쯤 땅속에서 한참 동면 중이어야 하는데 땅속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첫 번째 든 의문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10월 중순쯤에 겨울잠에 들어가 4월 중순에 나온다고 합니다. ('지식백과'에 언급된 내용)
그러면 이미 두 달 넘게 녀석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늦게까지 들어가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 까닭이 있을 터.
우선 쉽게 드는 생각은 겨울잠 자는 동물은 들어가기 직전까지 음식물을 최대한 섭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6개월 간 버틸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녀석이 아직 겨울잠에 들 만큼 충분하게 먹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즉 배가 차지 않았다는.
다음으로 그럼 다른 뱀들은 다 충분히 먹고 들어갔는데 왜 그 녀석 한 마리만 남아 있었을까요? 해답이 없습니다. 물론 인터넷 어디를 검색해도 답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이럴 땐 ‘에이, 모르겠다!’ 하고 그냥 지나치면 됩니다.
그런데 성격이 더러워서 한 번 든 의문을 스스로 풀지 못하면 잠을 못 이룹니다. 그래서 그저께 하루 종일 그 일로 머리를 굴렸습니다. 겨우 잠들게 만든 최종 해답은 바로 '치매 걸린 뱀'이라는 결론입니다. 동물학자가 들으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집 풍산개 태백이가 14년 되니까 치매 증상이 나타났으니, 그보다 지능 떨어진 뱀이라 해도 치매 증상 나오지 말란 법 없지 않습니까. 뱀에게도 치매 증상이 있다면 땅속에 들어갈 계절을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 가설은 전혀 가능성 없어 보이지만 어쨌든 잠은 들 수 있었습니다.
어떤 원인으로 뱀이 죽었을까? 두 번째 의문입니다.
차에 치여 죽지 않았으면 배 부분 상처가 유일한 사인(死因)인데, 무엇에 찔렸을까, 찔렸으면 왜 하필 배 쪽일까? 갑자기 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가 등을 찌를 순 있어도 배는 가장 찔리기 힘든 곳인데...
위에서 날아온 게 아니라면 아래로 기어가다 찔린 게 아닐까? 날카로운 유리조각 위를 지나다 배가 찔러 피 흘려 죽었다? 그렇다면 평소 배로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뱀이 그런 위험요소가 있으면 본능적으로 피했을 텐데 왜 그랬을까?
동물학자, 특히 파충류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저 같은 문외한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쓸 뿐. 그래서 이번에도 뱀에 나타나는 ‘치매 현상’으로 풀이해 봅니다. 평소엔 위험을 감지하지만 치매에 걸려 유리조각 위를 무작정 가다가 찔렸으리라...
대충 글 줄거리 잡아가는데 지나치던 아내가 흘낏 보기에 보여줬더니 한 마디 하는 말,
"아니 그래, 이 글의 주제가 도대체 뭐예요? 읽는 사람들이 뭘 얻어라고 쓴 글이어요?"
갑자기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래 내가 이 글에서 던질 메시지는 무언가? 단순히 겨울에 뱀 한 마리 죽은 사실을 보았다는 내용을 알림인가?'
그래도 아내에게 이리 말했습니다.
"아, 이 사람아! 우리가 뭐 꼭 의미를 가져야 사나? 그냥 아무 의미 없이도 살지 않나?"
그래서 오늘 글은 아무 의미를 담지 않은 가벼운 글이 되었습니다.
*. 사진으로 뱀 사체를 올리려 했으나 징그럽게 여길까 봐, pixabay에서 보기 편한 일러스트를 골랐습니다.
*. 오늘 글은 2021년 12월 31일 올렸는데,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