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35)
며칠 전 ‘가축분 퇴비’가 도착했다는 이장님의 안내방송이 온 마을에 울려 마을회관으로 갔다. 우리 집에 배당된 양은 1 팰릿(흔히 '빠레트'라 하는데 외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팰릿'). 그러니까 지게차로 한 번에 갖다 놓을 수 있는 양이다.
지게차가 마당까진 실어다 줬으나 그 뒤가 문제다. 최소한 봄 될 때까지 두어 달 내버려 둬야 하는데 보기 싫다고 하시는 분이 집에 계시니. 어디에 쌓아둘까 생각해보다 집 뒤로 옮기기로 했다. 거기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비도 피할 수 있으니 안성맞춤.
한 팰릿이 80포나 되며 한 포 무게가 20kg이니, 모두 다 옮기려면 1600kg 즉 1.6톤이나 된다. 허약체질에겐 무리이지만 할 사람이 뉘 있으랴. 어제까지 사흘에 걸쳐 다 옮겼다. 힘 좋은 사람이 봤더라면 “아이고, 저 호리뺑뺑이 일을 사흘씩이나!” 하고 혀를 찼을 터.
가축분 퇴비에 ‘똥 ‘분(糞)’이 들어갔으니 가축의 똥을 삭혀 만든 거름이다. 주로 소똥이고 드물게 닭똥 돼지똥도 들어간다고 한다. 요즘은 우리처럼 대부분 농협에서 구하지만 간혹 소 키우는 집에서 직접 만든 거름을 사는 집도 있다.
장점은 농협 거름보다 반값이고, 단점은 제대로 저장 못해 비라도 맞게 되면 냄새 때문에 큰일 난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저장 공간이 있으면 이게 더 유용하다.
어떤 거름이든지 바로 뿌리되 작물 심기보다 두어 달 더 일찍 넣는 게 좋다. 왜냐하면 갓 나온 퇴비는 탄산가스가 많이 나오니까 숙성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아시다시피 탄산가스는 식물이 싹을 틔울 때 영향을 준다.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 표현을 빌리면 적당히 ‘띄운(숙성시킨)’ 뒤 넣어야 한다.
거름과 더불어 텃밭에 꼭 필요한 게 바로 '비료'다. 물론 비료 없이 거름만 있어도 식물은 자란다. 헌데 비료를 넣으면 좀 과장된 표현으로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고 할까. 그러니 넣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비료라 하는데 앞에 두 글자가 빠져 있다. ‘화학’ 그러니 정확히는 ‘화학비료’다. (드물게 ‘유기질비료’가 있긴 하지만) 화학공학, 화학회사, 화학약품처럼 ‘화학’이 붙어도 거부감을 덜 주는 말이 있는 반면, 사람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화학이 붙으면 기피 대상이 된다.
하지만 (화학) 비료를 친 뒤 수확량과 안 친 뒤 수확량이 확연히 차이가 나니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우리 집엔 아직 농약은 치지 않으나 3년 전부터 비료를 조금 넣는다. 처음 비료를 넣고 양파를 거둬들이는 날 전(前) 해와 다른 엄청난 수확에 눈이 커졌다.
거름은 땅을 기름지게 한다. 달리 말하면 흙을 생기있게 변화시킨다. 당장 우리 텃밭을 보면 안다. 원래 우리 밭은 뻘땅이었다. 비만 오면 뻘이었다가 안 오면 돌처럼 단단히 굳어지는. 이런 땅은 농사에 아주 좋지 않다.
헌데 그동안 부지런히 거름을 넣은 덕으로 이젠 비가 와도 뻘이 되지 않고 물 빠짐이 좋은 포실포실한 땅이 되었다. 삽으로 땅을 파헤치면 지렁이가 꿈틀 되는 모습을 상시 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기분 좋다.
비료도 땅을 변화시킨다. 헌데 많이 들어가면 좋은 변화가 아니라 나쁜 변화가 나타난다. 특히 ‘질산칼슘’ ‘황산칼륨’ 같은 산성 비료를 많이 쓴 땅은 산성 토양으로 바뀌니까. 산성 토양은 필수 양분 결핍으로 이어져 식물생장에 저해를 받고, 독성이 증가하여 뿌리가 부실해지고, 토양 미생물의 감소로 이어짐은 이미 다 아는 사실.
이걸 보면 거름과 비료를 우리 사람에게 대입하기 딱 좋다. 거름은 많이 주면 줄수록 좋은데 비료는 적당히 줌은 필요하나 많이 주면 다른 부작용을 일으키니까. 거름이 오랜 시간 꾸준히 필요하다면, 비료는 속성으로 웃자람을 필요로 할 때 쓴다.
요즘은 잘 들을 수 없으나 예전 외국팀과의 축구 경기를 보면 해설자가 늘 비판하는 말이 있다. ‘기술은 좋은데 기본기가 부족하다.’ ‘초중고 시절에 기본기를 가르치는 대신에 골 넣기 위한 기술만 가르쳤다.’
수업받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기본 원리 익히는데 시간 들이기보다 시험 문제 푸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인성 올바르게 키우는 건 표시가 안 나지만 시험 성적 오르는 건 눈에 보이니 거기에 더 신경 썼다.
'기본기나 기본 원리'는 거름이다. 오랜 시간 꾸준히 익혀야 할 정말 중요한 요소다. 그에 비하면 비료는 눈에 보이는 '단기간의 성과'다. 물론 기술이나 성과도 필요하다. 축구 시합에 나가는 선수가 골 넣은 기술 연마를 등한히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런데 이제 비료가 거름을 앞서는 시대가 되었다. 눈으로 그 성과가 확 드러나야 대우받는다. 아이들만 봐도 예전보다 키가 크고 덩치도 커 서양인들과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비료 잘 먹은 남새(채소)처럼.
어른들도 예전에 비해 훨씬 오래 산다. 70을 고희라 했는데 이 말은 ‘고래희(古來稀 : 옛날부터 드물다)’에서 왔다. 허나 이젠 70이면 경로당 주전자 물당번을 못 면한다. 팔순은 물론 구순 넘어서도 글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그림 전시회도 열고, 음악회도 개최하는 분들도 드물지 않다.
자 그럼 내적으론 얼마나 충실할까? 육체적으로 보면 더할 수 없이 튼튼해 보이는데 우리 아이들은 과연 단단할까? 체력장이 입시에 반영되던 시절 '오래 달리기' 하다가 몇 명 쓰러진 뒤 폐지되었고, 운동장에서 조례할 때 넘어지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없어졌다. (혹 체력장과 운동장 조례 부활을 뜻하는 글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40년 전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 지게로 무거운 짐을 날랐다. 나도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돼서도 아직 살아있지만 빌빌 맨다. 이런저런 병에 먹는 약은 몇 개인지...
사흘간 힘들여 쌓은 가축분 퇴비를 보면서 저게 들어가면 땅은 얼마나 반길까를 생각해 본다. 만약 땅이 말할 수 있다면 이리 말할 게 틀림없다.
“아저씨, 거름은 무지무지하게 줘도 좋지만 제발 비료는 적게 주세요.”
*. 오늘 글은 2022년 1월 5일 올렸는데,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