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18.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1)

제101편 : 장정일 시인의 'Job 뉴스'

@. 오늘은 장정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Job 뉴스
                           장정일

  봄날,
  나무 벤치 위에 우두커니 앉아
  <Job 뉴스>를 본다.

  왜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보며 휘파람 부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호수의 비단잉어에게 도시락을 덜어 주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소풍 온 어린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놀라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비둘기 떼의 종종걸음을 가만히 따라가 보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나뭇잎 사이로 저며 드는 햇빛에 눈을 상하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나무 벤치에 길게 다리 뻗고 누워 수염을 기르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이 40억 인류의 Job이 될 수는 없을까?
  - [시 읽는 기쁨 2](2001년)

  #. 장정일 시인(1962년생) : 최종 학력은 중졸인데, 청소년기에 폭력 사건에 연루돼 소년원에 들어가 실형을 살면서 책을 읽고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함. 중졸이건만 오직 뛰어난 문예 창작 능력으로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를 역임한 소위 ‘천재 시인’
  1984년 [언어의 세계]를 통하여 시인으로,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극작가로, 1988년 [세계의 문학](봄호)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 1988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펴내 당시 최연소(26세) 나이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1997년에 [내게 거짓말을 해 봐]란 소설로 필화 사건을 겪었는데, 너무 외설적이라고 언론과 문인들에게 고발 당함




  <함께 나누기>


  우리가 삶의 목적을 잘 살기 위함에 둔다면, 잘 살기 위해서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이왕이면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겠지요. 그래서 어떤 글쟁이는 ‘인생은 직업(job)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 했나 봅니다.
  오늘 시에 나오는 job은 소문자가 아니라 대문자(J)로 돼 있습니다. 참고로 ‘job’을 사전에선 '돈 버는 일' 뿐 아니라 ‘의무’, ‘과제’란 뜻도 지닙니다. 그리고 발음에 유의하면 ‘잡(雜, job)스러움’의 뜻도 지닙니다. 다만 대문자인 점은 달리 생각해야 하겠지요.
  시인이 별 뜻 없이, 또는 실수로 썼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시인이 시어 하나하나에 기울이는 정성은 평범치 않으니까요. 문득 Job으로 대문자로 함은 ‘직업’을 공경하는 의미 담도록 만든 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시인이 아래 나열한 여섯 가지 일(?)을 봅니다. 이걸 보고 우리는 과연 직업이라 할 수 있을까요?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보며 휘파람 부는 일’, ‘호수의 비단잉어에게 도시락을 덜어 주는 일’, ‘소풍 온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는 일’, ‘비둘기 떼의 종종걸음을 가만히 따라가 보는 일’, ‘나뭇잎 사이로 저며 드는 햇빛에 눈이 상하는 일’, ‘나무 벤치에 길게 다리 뻗고 누워 수염을 기르는 일’
  위에 나온 여섯 가지를 솜솜히 뜯어봐도 우리가 볼 때 어느 하나 직업이라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럼 모두 하잘것없는 일일까요? 모두 헛된 일이라 다 버려야만 할까요? 아니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까요?

  문득 [개미와 베짱이] 우화가 생각납니다.


  개미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하는데 베짱이는 일하지 않고 노래만 부릅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자 개미는 부지런히 모은 양식으로 굶지 않고 넉넉하게 살아갑니다. 그때 베짱이가 찾아와 양식을 나눠 달라고 손을 내밀자 개미가 뿌리치며 매몰차게 말합니다.
  “우리가 일할 때 당신은 놀며 지내지 않았는가? 일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지 않았는가. 그런 당신을 위해 쌀 한 톨도 빌려줄 수 없으니 나가게!”

  우화는 그렇게 끝나면서 개미는 부지런한 곤충, 베짱이는 게으른 곤충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허나 이 우화는 맹점을 가집니다. 일단 베짱이는 가을에 알을 낳고는 모두 다 죽습니다. 그러니 양식을 저장하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베짱이에게 노래는 짝을 찾기 위한 고귀한 일입니다. 지금 노래만 부르는 가수를 직업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인의 일도 마찬가집니다. 세상을 언어로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다른 직업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아니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 시인은 대문자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40억 인류의 Job이 될 수는 없을까?”
  육체를 움직여 돈을 벌어 먹고살기 위한 직업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도 직업이 될 수 있습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비단잉어, 비둘기 떼, 나뭇잎 등으로 우주를 아름답게 묘사하는 시인이란 직업(job)은 더없이 숭고하니까요.

  *. 사진은 모두 "뉴시스"에서 퍼왔습니다.






 표정짓기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