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20. 2024

목우씨의 긁적긁적(78)

제78화 : 첫사랑의 편지(11)

@. 제게 학교는 어느 학교 어느 때든 첫사랑이었고, 그때 제자들이 보낸 편지도 당연히 첫사랑의 편지입니다.

  오늘 편지는 한 소녀가 자기 가정의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담았는지라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 배달합니다.


        * 첫사랑의 편지(11) *


  존경하는 선생님께!

  선생님, 전 우리 집의 가정에 대해서 몇 자 올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제가 자랄 때 아버지의 정을 받았지만 커서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 모두가 아버지의 정을 못 느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아버지께서 우리 집에 처음 보는 여자를 데려왔습니다.  우리는 철없이 자라서 그 사람이 친척인 줄만 믿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우리 가정에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보다 더 좋아했고 잘 따랐습니다. 어느덧 5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처음으로 싸움을 했습니다. 우리는 울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어머니는 우리에게 학교에 놀다오라고 했고 작은언니와 동생 등 우리 셋은 학교에서 놀다가 집에 오니 어머니는 큰언니와 집을 떠났고 우리들은 굶주린 배를 조이며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녁에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그 뒤 우리는 하루 세 끼를 다 먹는 법이 없고 두 끼도 먹을까 말까 하고.
  어머니가 나가고 그 여자가 들어온 뒤로 매일 밥도 굶고 집에는 빚쟁이가 찾아오고 행패를 부리고,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고통을 겪었습니다.


  (편지 삭제)


  세월은 자꾸 흐르고 하루는 학교에서 3교시가 지나자 어머니께서 학교에 오셨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나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전 나오는 눈물을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 울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전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와서 작은언니와 동생에게 (만나게 했고) 어머니는 우리에게 샌드위치 하나씩 사다 주곤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는 어머니가 또 오시는 줄 알고 또 오라는 인사를 하고 어머니와 다시 헤어졌습니다.

  헤어질 때 어머니가 우리에게 엄마 왔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뒤) 우리는 매일 밥을 굶고 매를 맞고 3년을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가신 지 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런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 즐거웠습니다.

  한 1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 여자와 우리는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와 어머니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고 그 여자는 같이 살고 있습니다.

  할말은 많은데 이만 줄이겠습니다. 선생님, 스승의 날에 이런 편지 보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몸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1980년 5월 15일
                       제자 올림


  (편지 삭제)



  <함께 나누기>

  읽고 나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때로 돌아갔습니다.
  사실 글 쓴 소녀(당시 중2)는 자기 신분 밝힐 어떤 암시도 없었습니다만 제가 필적 확인을 통해 소녀를 찾아냈습니다. 소녀를 아이들 몰래 살짝 불러내 위로한다고 했는데 제가 먼저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치 소설 속 얘기 같아서.

  다시 읽어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44년 전 1980년에 이런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니. 같은 남자로 참 부끄럽습니다. 지금 이 소녀 60세쯤 되었을 텐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머니와 네 자매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참 맞춤법은 물론 문맥의 앞뒤가 안 맞는 곳도 있어 제가 몇 군데 손을 봤음에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열 명쯤 읽은 시점에 편지 내용을 확인한 걸로 보아 편지 원본 복사한 내용은 삭제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산골일기(16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