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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22.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2)

제102편 : 오은 시인의 '청춘'

@. 오늘은 오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청춘
                           오은

  거센소리로 머물다가
  된소리로 떠나는 일
  칼이 꽃이 되는 일
  피가 뼈가 되는 일

  어떤 날에는
  내 손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 손은 내가 아니니까
  내 마음이 아니니까

  자유는 늘 부자연스러웠다

  몸의 부기를 빼는 일
  마음을 더는 일
  다시
  예사소리로 되돌리는 일

  꿈에서 나와 길 위에 섰다
  아직, 꿈길 같았다
  - [유에서 유](2016년)

  #. 오은 시인(1982년생) : 전북 정읍 출신으로 20세인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Daum’에서 빅데이터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퇴직, 2018년부터 [예스24]에서 제작하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시인은 언어유희(일종의 말장난)를 활용한 시를 많이 쓴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비교적 젊은 시인인데 요즘 어려운 시를 많이 쓰는 시인들과 다르게 읽고 싶은 시를 많이 쓰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년 전 제 눈에 띈 그 뒤로 쭉 배달하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는 일단 쉬워야 읽힌다는데 저는 방점을 찍으니까요.


  이 시를 이해하려면 우선 된소리, 거센소리, 예사소리를 알아야 합니다. 다들 중고 시절에 배웠겠지만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분들을 위해 잠시 덧붙입니다. 우리말 자음에는 ‘예사소리 < 된소리 < 거센소리’의 세 층계가 존재합니다. 아래처럼 말입니다. ‘예사소리(ㄱ ㄷ ㅂ ㅈ) < 된소리(ㄲ ㄸ ㅃ ㅉ) < 거센소리(ㅋ ㅌ ㅍ ㅊ)’ 여기 부등호(<)처럼 오른쪽으로 갈수록 센 소리가 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졸졸’보다는 ‘쫄쫄’이, ‘쫄쫄’보다는 ‘촐촐’이 더 세게 느껴집니다. ‘감감 < 깜깜 < 캄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시에 표현된 ‘거센소리로 머물다 된소리 되었다가 예사소리로 되돌아간다.’를 조금씩 부드럽게 변해감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거센소리로 머물다가 / 된소리로 떠나는 일”

  각 시행의 주어는 ‘청춘’이니까 ‘청춘은 거센소리로 머물다가 된소리로 떠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로 ‘칼(거센소리)이 꽃(된소리)이 되고, 피(거센소리)가 뼈(된소리)가 되는 일’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청춘은 '칼과 피' 같은 거센소리가 '꽃과 뼈' 같은 된소리가 된다는 뜻으로, 청춘이 강(强)함에 중(中)이 더해지는 과정으로 봅니다. 마침 이 시행에 딱 어울리는 수필이 생각납니다. 민태원 님의 [청춘예찬]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같이 힘있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뜨거운(强) 피가 따뜻함(中)으로 변화하며 청춘은 맹목적인 강함에서 부드러움도 갖추게 됩니다. 청춘은 힘차고 활력이 강해 추진력 있지만 우리 삶에는 칼과 피보다 꽃과 뼈가 더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어떤 날에는 / 내 손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내 손은 내가 아니니까 / 내 마음이 아니니까"

  청춘은 밀고나간다고 하여 다 이룰 수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내가 하고자 한들 이루기 어렵고, 마음대로 나아가려 해도 그게 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말이 가장 많은 시기이나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고, 할 말 다하고 싶지만 입 다물어야 할 때가 더 많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자유는 늘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가끔 예외는 있지만) 마음껏 누려야 할 청춘의 자유를 속박당한 채 살아야 했습니다. 얽매임에 벗어나야 하건만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취업난에 이어 결혼이란 장벽을 넘어야 하고, 그걸 이루었다고 한들 아파트 구입과 대출. 또 이어지는 자식을 가져야 하느냐 마느냐로.


  "몸의 부기를 빼는 일 / 마음을 더는 일 / 다시 / 예사소리로 되돌리는 일"

  '거센소리(强)'에서 '된소리(中)'로 청춘은 변화했지만 아직 부족. 결국 청춘은 '예사소리(弱)'가 되어야 합니다. 그건 몸의 부기와 마음의 부기를 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몸이나 마음의 부기는 다 욕심(혹은 '얽매인 꿈')으로 보아야 하겠지요.


  "꿈에서 나와 길 위에 섰다 / 아직, 꿈길 같았다"

  꿈이 '청춘의 이상'이라면 길은 '청춘의 현실'이겠지요. 청춘의 꿈은 '자유와 풍족'이건만 현실은 허무할 수밖에. 그것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는 자유롭더라도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속박과 다름없습니다.
  못 다한 일이 많아 아쉬움만 남은 청춘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막상 그런 기회가 온다면 망설이게 됨도 청춘이 지닌 이중성 때문일까요? 뜨거우면서도 차갑고, 멋지면서도 아슬아슬하고, 손에 바로 잡힐 것 같으면서도 손 내밀면 아스라이 멀어지는 청춘.

  거센소리에서 된소리를 거쳐 이젠 예사소리가 된 청춘을 저는 되돌리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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