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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28.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5)

제105편 : 김영승 시인의 '반성 163'

@. 오늘은 김영승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반성 163
                                김영승

  코끼리들이 문득 가엾다.
  코끼리 발바닥엔
  어느 정도 두께의 굳은살이 박혔을까.
  그 거대한 몸뚱이를 지탱하며 먹이를 찾아
  뛰어다닌 벌판.
  굳은살이라곤 입술과 유방과 성기밖에 없는
  불행한 남녀들이 다투어 몰려온다.
  귀족적이려고 매력적이려고 그리고
  지성적이려고 무지무지 애를 쓰고 있다.
  가엾다.
 - [반성](1987년 초간)

  #. 김영승(1958년생) : 인천 출신으로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하여 등단하여 이듬해 [반성]이란 시집을 펴내면서 주목을 받음. 세상에 대한 저항과 정화의 욕망을 배설의 시학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음
  (참, 전남 진도 출신의 동명이인 김영승 시인도 있으니 혼동 마시길)


(코끼리 발바닥 - 구글 이미지에서)



  <함께 나누기>

  28살에 시인이 되었고, 이듬해인 29살에 펴낸 시집이 아직도 그 뒤에 펴낸 다른 시집보다 많이 읽히고 있는 시인. 제가 김영승 시인을 소개할 때 늘 덧붙이는 말입니다. 아주 오래된 [반성]이란 시집 속의 시들이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가만 읽으면 아시겠지만 [반성]이란 시집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거의 40년 전에 썼는데 지금 현실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반성’이란 말은 스스로를 반성한다는 뜻을 담았지만 읽는 이들도 반성하도록 만듭니다.

  오늘 시는 10행으로 되어있는데 내용상 1~5행과 6~10행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이 코끼리에 대한 거라면 뒷부분은 우리 인간에 대한 이야깁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엄청난 비틀기 -풍자 -를 느끼지요. 쩌릿쩌릿할 정도로 그 풍자성이 대단합니다.

  1~5행에선 코끼리 발바닥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코끼리들이 문득 가엾다”
  ‘가엾다’란 말의 뜻에 힘주고 읽으면 ‘어, 아닌데!’ 하실 겁니다. 네, 사실 가엽기보다 예찬하는 내용이니까요.  코끼리 발바닥은 무척 두껍습니다. 우린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그렇게 굳은살이 박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거대한 몸뚱이를 지탱하며 먹이 찾아 초원을 뛰어다녔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코끼리 발바닥의 굳은살은 삶의 훈장인 셈입니다. 농부의 손바닥이 거칠고, 대장장이 팔뚝에 불에 덴 흔적, 투수가 공 던지는 팔이 다른 쪽 팔보다 더 긴 것과 마찬가지로.

  헌데 6~10행으로 가면 달라집니다.

  “굳은살이라곤 입술과 유방과 성기밖에 없는 / 불행한 남녀들이 다투어 몰려온다”
  '입술의 굳은살'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뒤에 나오는 ‘지성적이려고 무지무지 애쓰고 있다’에서 짐작해 봅니다. 말을 솔직담백하게 하는 것보다 지식이 많은 양 미사려구를 섞어 현란하게 구사함이 아닐까 합니다. 즉 진실을 말하기보다 수사에 가까운.
  '유방의 굳은살과 성기의 굳은살'은 역시 뒤에 나오는 '매력적'이란 말에서 유추해 보면 남녀 모두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어필하려 한다는 뜻 같습니다. 그렇지요, 남자든 여자든 요즘 ‘섹시하다’ 하면 기분 나쁘게 듣지 않고 멋있다는 말로 듣는다지요.

  “가엾다”
  첫 행에 나온 ‘가엾다’와 끝 행의 ‘가엾다’는 전혀 다릅니다. 앞은 코끼리 진지한 삶의 자세로 얻은 굳은살 몰라주는 현실이 가엾다라면, 뒤는 진지함이나 진실과 거리가 먼 오직 남 보기에만 신경 쓰는 세태를 가엾다고 풍자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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