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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27.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28)

제228편 : 이해인 수녀의 '고독을 위한 의자'

@. 오늘은 이해인 수녀의 시를 배달합니다.


     고독을 위한 의자

                                 이해인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 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 [꽃삽](1994년)


  #. 이해인 수녀(1945년생, ‘해인’은 필명) :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1964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하였으며, 세례명은 ‘벨라뎃다’ 수도자 명은 클라우디아. 일반적인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냄으로써 시인으로 활동함




  <함께 나누기>


  오늘 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숲 속의 생활]에 나오는 구절과 맞닿습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게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누군가와 같이 있다 보면 이내 피곤해지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좋다. 지금껏 나는 고독만큼 함께 있기에 좋은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우린 대부분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외롭다고 느낀다. 사색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혼자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의 거리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는 참 쉽습니다. 읽고 나면 생각거릴 줘 더욱 좋구요. 오늘 시도 그렇습니다. 몹시 번잡한 도심에, 번잡하게 많은 사람, 번잡하게 들이닥치는 일거리, 번잡하게 얽힌 사람 사이의 갈등...

  이러다 보니 우린 어느새 번잡함에 중독이 되어 잠시나마 홀로 생각하고 홀로 즐기는 맛을 잃은 채 살고 있습니다. 아주 잠시잠깐이라도 짬 내 홀로의 시간을 갖는다면 어떨까요? 요즘 도심 건물 꼭대기층에 마음수련의 장이 열린다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


  제가 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 몇 장면을 나열해 봅니다.

  따뜻한 봄날 들녘에 나와 홀로 볕살 즐기며 나물 캐는 여인,

  시골 성당에 찾아 들어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여인,

  유서 깊은 고가(古家)를 보며 연필 놀려 스케치를 하는 여인,

  도서관 앞뜰에 나와 혼자 앉아 책 읽는 여인,

  낙엽 자욱 깔린 단풍길을 홀로 걷는 여인...


  외로워 보이기는커녕 자유롭고도 창조적인 쉼의 짬을 가지는 모습에서 절로 옷매무새를 여미었지요. 어떤 일에 몰두함은 나를 잊는다는 뜻이며, 그 시간에 또 다른 나를 찾는 길이라 여겨 경건한 마음이 일더군요.

  요즘은 잠시 다른 운동거리로 마을 한 바퀴길을 쉬고 있지만 정말 제게 그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다행히 길 걷기 대신 날이 추워져 아궁이에 장작불 지피다 보니 그 불꽃 보며 혼자만 시간을 가짐이 또 얼마나 좋은지...


  감나뭇잎이 떨어져 바람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일으키는 작은 소리도 얼마나 좋은지요. 그러다 홍시 떨어져 옷에 묻기라도 하면 그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아 짜증이 나는데, 문득 삶의 얼룩이라 생각하면 나름대로 의미가 또 있고.

  겨울이 오는 길목입니다. 나뭇가지 가지마다 옷을 다 벗은 모습조차 홀로 삶의 의미를 더해줍니다. 비 오면 테라스 홈통 타고 떨어지는 낙숫물이 일으키는 소리조차 참 정겹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눈 내려 갈 길을 막아도 그저 하양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시를 읽고 공부하는 기분 또한 정말 좋습니다. 그러니 어쩜 수녀 시인은 홀로 삶의 참맛을 알려주려 이 시를 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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