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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31)
제231편 : 장경린 시인의 '퀵 서비스'
@
.
오늘은 장경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퀵 서비스
장경린
봄이 오면 제비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면
발정 난 고양이를 담장 위에
덤으로 얹어드리겠습니다 아기들은
산모 자궁까지 직접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꽁치를 구우면 꽁치 타는 냄새를
노을이 물들면 망둥이가 뛰노는 안면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신 이들의 혼백은
가나다순으로 잘 정돈해두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제비들을 데리러 오겠습니다
쌀쌀해지면 코감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 [토종닭 연구소](2005년)
#. 장경린 시인(1957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85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한국은행에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퇴직. 1990년대의 대표시인으로 평가받으며 풍자(비틀기)에 능함
<함께 나누기>
시 주제를 드러내는 기법 가운데 하나가 ‘상황 비틀기’입니다. 현실을 비틀어 풍자한다는 말이지요.
이 시는 언뜻 읽으면 쉬운 듯한데 한 번 더 읽으면 어렵다고 느껴질 겁니다. 그게 바로 ‘비틀기’에서 옵니다.
퀵서비스는 말 그대로 빠른 배달 서비스입니다. 얼마나 빨리빨리 배달할까요?
'봄이 오면 제비들을' 순식간에 보내드리고,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빠르게 돌려드립니다. 그러니 퀵 서비스 맞지요.
“비 내리는 밤이면 / 발정 난 고양이를 담장 위에 / 덤으로 얹어드리겠습니다” 하는 시행까진 아주 점잖습니다. 헌데,
“아기들은 / 산모 자궁까지 직접 배달해드리겠습니다”에 이르면 본격적인 비틀기가 시작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 시행은 엄마가 아기를 직접 뱃속에서 잉태하여 낳지 않고 시험관에서 만들어 대리모에게 넘기는 현실을 비튼다고 보면 됩니다.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오면 비틀기가 절정에 이릅니다. '나'가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나는 존재 가치를 상실하니 상품권으로나 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상품권으로 바꾼다? 모든 가치가 돈(상품권)으로 평가된다고 보면 물질만능주의 팽배에 대한 풍자일 수도 있겠군요.
“꽁치를 구우면 꽁치 타는 냄새를 / 노을이 물들면 망둥이가 뛰노는 안면도를 /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점잖은 비유로 돌아갑니다. 정말 퀵 서비스입니다. 냄새조차 배달하고, 물고기가 뛰노는 섬까지 배달하니까요.
그런데 배달받고 싶은 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떨치고 살 수 있도록 참한 일자리는 퀵 서비스로 배달 안 될까요?
“돌아가신 이들의 혼백은 / 가나다순으로 잘 정돈해두겠습니다”
시인은 돌아가신 이들의 혼백을 잘 정돈해두겠다고 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도 퀵 서비스로 저승으로 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 힘 있다고 남을 깔아뭉개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한둘이 아니군요.
“쌀쌀해지면 코감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이것만은 퀵 서비스로 받고 싶지 않은데... 이미 독감 예방접종 했지만 남들보다 면역성이 떨어져 더 쉽게 잘 걸리니, 정말 받고 싶지 않습니다.
*. 사진 대신 크라잉넛이 부르는 <퀵 서비스맨> 들어보세요.
https://youtu.be/njwAUP3w_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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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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