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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10.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34)

제234편 : 나석중 시인의 '박제된 골목길'

@. 오늘은 나석중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박제된 골목길

                                      나석중


  골목길은 아이들이 나와 놀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여자들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출근했던 남자들이 귀가하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행상들이 와서 고래고래 떠들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갓 떨어진 가로등도 나가 불을 밝히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흘레붙은 개새끼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도둑고양이도 어슬렁거리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우체부도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이따금 그림자 없는 사람들 몇 기웃거립니다

    - [시인시각](2010년 여름호)

 

  #. 나석중 시인(1938년생) : 전북 김제 출신으로 2004년 [신문예]를 통하여 등단.

  66세에 등단하여 67세인 2005년 첫 시집 [숨소리]를 펴낸 뒤 2ㆍ3년에 한 권씩 시집을 펴내다가 며칠 전에 열 번째 시집 [하늘은 개고 마음은 설레다]를 출고함



  <함께 나누기>


  시 제목 「박제된 골목길」에서 떠오르는 소설 있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이상의 [날개]이며, 다음은 그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시인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제목은 이 구절에서, 시행 배열은 그 어려운 「오감도」에서 영향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중씰한 나이에 든 분이라면 골목길, 이 말만 들어도 좁고 비뚤비뚤하여 숨바꼭질하기 좋던 어린 시절로 기억의 태엽이 절로 되감길 겁니다.

  어쩌면 저녁 먹고 소화될 즈음 “찹쌀떡, 사려!” “메~밀~묵!” “야끼모, 왔어요!”라 외치는 장사치의 구호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 거구요.


  그런데 오늘 시에서의 골목길은 좀 다른 느낌이지요. 사람들 웃음소리가 흐르던 그 즐겁고 흥겨운 그때의 골목길이 아닌 생기가 사라진 현실의 골목길.

  화자가 기억하는 골목길은 아이들이 뛰놀며, 여인네들의 악다구니가 울려 퍼지며, 퇴근길 술 한 잔 걸친 사내들 노랫소리가 들려오며, 장사치들의 호객으로 시끄러우며, 개와 고양이가 터줏대감인 듯이 거닐며,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가 드나들던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하나 이 시에서는 다릅니다. 8행 (사실은 ‘행’이 아니라 '연')까지 이어지는 시행의 끝에 쓰인 서술어가 부정의 뜻을 지닌 '않습니다'입니다.  이 '않습니다'에 담긴 의미를 유추해 볼 때 골목길은 예전에 우리가 알던 생기 돌던 활기찬 공간이 아니라 죽어버린, 사라진 공간일 뿐입니다.


  혹 이 시를 처음 대했을 때 각 1행이 각 1연으로 된 것보다 읽기 편하도록 모두 한 연으로 묶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즉 8행이 모두 따닥 붙어 1연으로 된.

  여기에 시인의 속내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즉 한 행을 하나의 연으로 만들어 각 연 사이에 생긴 여백을 통해 활기가 사라진 죽어버린 텅 빈 골목길을 보여주려구요. 그러면 화자가 보고 있는 골목길은 생기가 사라진, '그림자 없는 사람들 몇 기웃거리는' 박제된 공간이 될 수밖에요.


  이제 도시 골목길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큰길(大路)이 도시의 동맥과 정맥이라면, 골목길은 미세 혈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즉 가느다란 혈관 같은 골목길을 통해 주민과 장사치와 수많은 동물이 끊임없이 돌고 돌아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런 골목길이 사라지고 삐까번쩍한 대형 건축물만이 도시를 채우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점을 안타깝게 보았습니다. 죽어 버린 골목길, 활력 잃은 골목길, 아이들이 놀지 않는 골목길, '박제된 골목길'을 보며 우리를 일깨우려 합니다.


  *. 문득 김현식이 부른 ‘골목길’이 듣고파서 이 노래를 띄웁니다.


https://youtu.be/WL1wZVmZUM8?si=QPLEvPhJ3_77ed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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