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석중 시인(1938년생) : 전북 김제 출신으로 2004년 [신문예]를 통하여 등단.
66세에 등단하여 67세인 2005년 첫 시집 [숨소리]를 펴낸 뒤 2ㆍ3년에 한 권씩 시집을 펴내다가 며칠 전에 열 번째 시집 [하늘은 개고 마음은 설레다]를 출고함
<함께 나누기>
시 제목 「박제된 골목길」에서 떠오르는 소설 있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이상의 [날개]이며, 다음은 그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시인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제목은 이 구절에서, 시행 배열은 그 어려운 「오감도」에서 영향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중씰한 나이에 든 분이라면 골목길, 이 말만 들어도 좁고 비뚤비뚤하여 숨바꼭질하기 좋던 어린 시절로 기억의 태엽이 절로 되감길 겁니다.
어쩌면 저녁 먹고 소화될 즈음 “찹쌀떡, 사려!” “메~밀~묵!” “야끼모, 왔어요!”라 외치는 장사치의 구호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 거구요.
그런데 오늘 시에서의 골목길은 좀 다른 느낌이지요. 사람들 웃음소리가 흐르던 그 즐겁고 흥겨운 그때의 골목길이 아닌 생기가 사라진 현실의 골목길.
화자가 기억하는 골목길은 아이들이 뛰놀며, 여인네들의 악다구니가 울려 퍼지며, 퇴근길 술 한 잔 걸친 사내들 노랫소리가 들려오며, 장사치들의 호객으로 시끄러우며, 개와 고양이가 터줏대감인 듯이 거닐며,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가 드나들던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하나 이 시에서는 다릅니다. 8행 (사실은 ‘행’이 아니라 '연')까지 이어지는 시행의 끝에 쓰인 서술어가 부정의 뜻을 지닌 '않습니다'입니다. 이 '않습니다'에 담긴 의미를 유추해 볼 때 골목길은 예전에 우리가 알던 생기 돌던 활기찬 공간이 아니라 죽어버린, 사라진 공간일 뿐입니다.
혹 이 시를 처음 대했을 때 각 1행이 각 1연으로 된 것보다 읽기 편하도록 모두 한 연으로 묶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즉 8행이 모두 따닥 붙어 1연으로 된.
여기에 시인의 속내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즉 한 행을 하나의 연으로 만들어 각 연 사이에 생긴 여백을 통해 활기가 사라진 죽어버린 텅 빈 골목길을 보여주려구요. 그러면 화자가 보고 있는 골목길은 생기가 사라진, '그림자 없는 사람들 몇 기웃거리는' 박제된 공간이 될 수밖에요.
이제 도시 골목길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큰길(大路)이 도시의 동맥과 정맥이라면, 골목길은 미세 혈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즉 가느다란 혈관 같은 골목길을 통해 주민과 장사치와 수많은 동물이 끊임없이 돌고 돌아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런 골목길이 사라지고 삐까번쩍한 대형 건축물만이 도시를 채우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점을 안타깝게 보았습니다. 죽어 버린 골목길, 활력 잃은 골목길, 아이들이 놀지 않는 골목길, '박제된 골목길'을 보며 우리를 일깨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