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17.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38)

제238편 : 박준 시인의 '기억하는 일'[

@. 오늘은 박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기억하는 일
                               박준

  서기 양반, 이 집이 구십 년 된 집이에요 이런 집이 동네에 세 집 남았어 한 집은 주동현씨 집이고 한 집은 박래원 씨 집인데 그이가 참 딱해 아들 이름이 상호인데 이민 가더니 소식이 끊겼어 걔가 어려서는 참 말 잘 듣고 똑똑했는데 내 자식은 어떻게 되냐고? 쟤가 내 큰아들인데 사구년 음 칠월 보름 생이야 이놈은 내 증손주야 작년 가을에 봤지 귤도 좀 들어 난 시어서 잘 못 먹어 젊어서 먹어야지 늙으면 맛도 없지 뭐 젊어서도 맛나고 늙어서도 맛난 게 있는데 그게 담배야 담배, 담배는 이 나이 먹어도 똑같긴 한데 재작년부터 기침이 끊어서 요즘은 그것도 못 피우지 참다 참다 힘들다 싶으면 불은 안 붙이고 물고만 있어 그런데 서기 양반은 죽을 날만 받아놓고 있는 노인네가 뭐 예쁘다고 자꾸 보러 온대

  구청에서 직원이 나와 치매 노인의 정도를 확인해 간병인도 파견하고 지원도 한다 치매를 앓는 명자네 할머니는 매번 직원이 나오기만 하면 정신이 돌아온다 아들을 아버지라, 며느리를 엄마라 부르기를 그만두고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고 며느리를 며느리라 부르는 것이다 오래전 사복을 입고 온 군인들에게 속아 남편의 숨은 거처를 알려주었다가 혼자가 된 그녀였다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년)

  #. 박준 시인(1983년생) : 서울 출신으로 2009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현재 [창작과비평] 편집부에서 일함. 별명이 ‘아이돌 시인’인데 그만큼 잘 생겼다는 뜻보단 요즘 대학생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시인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펴내는 시집이나 산문집마다 10만 부 이상 팔려 '베스트셀러 시인'이란 평을 받습니다.




  <함께 나누기>

  우리나라 당면 문제 가운데 전체 인구는 감소하는데 노인 늘어난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이라 합니다. 이런 말도 들리지요. 사고 나거나 큰병 얻지 않는 한 여든까지는 다 산다고. 그래서 경로당에 가면 여든이라도 유리창 닦아야 한다고.
  죽고 싶은데(?) 의사가 죽게 놔주지 않는다는 말도 들립니다. 하지만 아직 고치지 못할 병이 꽤 되는데 최악이 치매입니다. 기억이야말로 살아가는 존재 의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데 치매가 두려운 이유는 바로 그 기억을 빼앗아 간다는 점 때문입니다.

  오늘 시는 두 행(연)으로 돼 있는데 읽다 보면 먹먹함에 잠겨 잠시 호흡을 가다듬게 만듭니다.

  첫째 행만 읽으면 명자 할머니를 치매환자라 할 수 없습니다. 무척이나 수다스럽고 뛰어난(?) 기억력을 지녔으니까요. 둘째 행에선 명자 할머니가 공권력 앞에서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장면에 독자의 눈시울을 잠시 붉게 만듭니다.

  우리는 아주 격렬한 충격받은 경험 있을 때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그 충격이 되살아나는 현상을 두고 ‘트라우마’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민족은 특히 트라우마가 많습니다. 6·25, 4·3, 5·18, 10·29(이태원) 같은 숫자가 상징하는 큰 사건들로 하여.
  시에선 명자 할머니가 6·25 동란 중에 남편 찾아온 사복 군인에게 남편 숨어 있는 거처를 알려준 후 남편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군인들은 이렇게 말했겠지요. ‘있는 곳 대면 남편을 살려주겠다’고. 할머니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남편 위치를 가르쳐줬을 테고.

  할머니는 이제 나이 들어 치매에 걸렸습니다. 아들을 아버지라 부르고 며느리를 엄마라 부르는 치매. 할머니는 남편을 잃은 뒤 평생 혼자 아들을 키우며 살았는데, 아들네 가정도 생활이 어려워 도움이 안 되는 처지로 보입니다.
  그래서 구청 직원이 할머니를 돕기 위해 가정을 방문합니다. 치매임을 확인만 하면 도움 받게 됩니다. 허나 6·25 때 ‘정직하게’ 말해서 남편 잃은 트라우마가 있는 할머니는 구청 직원이 방문할 때면 정신을 차립니다.

  아들을 아버지로 며느리를 어머니로 부르는 상황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할머니에게 진실을 말해선 안 된다는 트라우마가 들어섭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결사적으로(?) 지어냅니다. 아들을 아들로, 며느리를 며느리로 부릅니다. 속으론 내가 참 잘 지어냈다고 여기며.
  결과적으로 할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지 못합니다. 구청 직원이 볼 때는 멀쩡하니까요. 이 장면에서 독자는 [TV문학관] 같은 영상을 떠올릴지 모르겠군요. 느린 화면으로 스쳐 가는 참 안쓰러운 장면을...

  앞에 든 숫자로 상징되는 사건은 다 지나간 일입니다. 허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린 흔히 지나간 아픈 일은 용서는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저는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렵니다.
  용서는 용서받아야 할 자의 몫이 아니라 용서해줘야 할 사람 몫이라고. 허나 다른 사람들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명자 할머니의 아픔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내 일이 아니니까 하며 그냥 넘겨버려도 되는 일일까요?

  *. 사진은 EBS1(2015.05.05)에서 방영된 '어린이날' 특집드라마 ‘할매는 내 동생’에서 취했습니다. 눈치챘겠지만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손자를 오빠라고 부릅니다. 그 드라마에서 소년이 할머니 얼굴을 씻어주며 코도 풀어주는 장면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