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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20.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93)

제193화 : 텃새가 된 청둥오리

      * 텃새가 된 청둥오리 *



  주거 상황에 변화가 생겨 잠시 울산 언양에 머물고 있다. 아파트에 있어도 걷기를 그만둘 수 없어 ‘남천내’ 주변에 조성된 둘레길을 한 바퀴 휘돈다. 도시에 들를 때마다 공원이나 둘레길을 보면 감탄한다. 태화강 상류인 이곳에도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코르크 바닥재’를 깔아놓아 걷기 참 좋다.
  ‘달내마을 한 바퀴’ 때와 마찬가지로 돌다 보면 꼭 만나는 녀석들이 있다. 바로 새들. 까치 까마귀는 두고서라도 왜가리와 물닭. 그리고 청둥오리. 물닭은 산골마을에선 보기 힘들지만 왜가리와 청둥오리는 종종 본다. 헌데 청둥오리를 보는 순간 ‘아!’ 했다.

  산골에선 초여름에 마을 한 바퀴 돌다 물이 가득 찬 논에 이르러 떼 지어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는데 여기선 겨울에 보다니. 아니 청둥오리는 겨울 철새이니 겨울에 봐야 당연하다. 여름에 보여선 안 된다. 그러니 더 이상하지 않은가.


(청둥오리 수컷)



  알아보니 처음엔 우리나라에 철새로 왔다가 텃새가 된 경우가 여럿 있다고 한다. 왜가리, 가마우지, 청둥오리, 물닭... 철새가 텃새화되는 까닭으로 여름 철새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올라가 굳이 따뜻한 곳으로 가지 않아도 견딜 수 있게 됐다나.
  그럼 겨울 철새는? 그 경우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원래 살던 곳보다 서식 환경이 나아 머문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하천 오염으로 중금속이 든 먹이를 먹고 몸이 허약해져 다른 나라로 이동할 만한 활공력을 잃어 포기한다나.

  그나저나 철새가 텃새가 되면서 농작물에 피해 입힌다는 기사도 보인다. 청둥오리는 벼 이삭 뜯어먹어 벼농사에 영향을 주고 가마우지는 양식장 물고기를 마구 잡아먹는다니..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라면 청둥오리를 보는 시각이 좀 다를 수 있다. 일단 내가 직접 피해 입는 건 아니니까.


(물닭)



  나는 청둥오리를 보면 기분이 좋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란 동화에서 주인공 암탉 ‘잎싹’을 구해주는 멋진 사내 ‘나그네’가 청둥오리여서다. 또 청둥오리는 일단 외관상 이뻐 보이니(특히 수컷) 겨울 한 철만 보기보다 일 년 내내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눈이 맑아진다.
  이런 점 말고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장점은 청둥오리는 한 마리를 보기 힘든 대신 가족이 모여 함께 산다는 점. 인간계에선 핵가족이니 뭐니 하여 자식과 부모가 떨어져 나가 살지만 청둥오리는 그렇지 않아서다.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참 많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바로 가정의 행복이며, 가정을 바탕으로 한 즐거움이 진정한 행복이라 여기기에. 남천내 둘레길 한 바퀴 길에 청둥오리 가족을 만날 때마다 절로 미소 짓는 까닭이 거기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청둥오리)



  어릴 때부터 우리는 학교에서 단일민족이란 말을 아주 자랑스럽게 배웠다. 한 민족이 올곧이 지탱해 온 나라는 세계 몇 나라 안 된다고 하면서. 또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똘똘 뭉치는 힘의 위대성을 강조할 때 단일민족만큼 좋은 사례가 있을까.
  그럼 현실은 어떨까? 작년 말 (2023년 12월) 발표된 국가지표에 따르면 현재 거주하는 외국인 비율은 5% 정도다. 5%라 하니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무려 250만 명이다. 즉 대구광역시 하나 정도의 인구가 된다는 말이다.
  거기다 작년(2023년) 결혼한 10쌍 중 1쌍은 ‘다문화 혼인’으로 이제 내국인끼리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문화 혼인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단일민족의 비율은 축소될 것이며 자랑스럽게 여기던 단일민족이란 말은 사라질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 가까이 ‘입실’이란 지역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경주시 외동읍 입실리인데 한때 단위면적 당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이 사는 곳으로 소문났다. ‘리’ 단위 지역이건만 곳곳에 자리한 빌라에 얼마나 이주노동자가 많은지. 입실 장날(3일, 8일)엔 그들만을 위한 좌판이 놓이고, 저녁이면 손님의 반 이상이 그들이다. (지금은 많이 빠져나감)
  이제 동남아시아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 없이는 중소기업이나 음식점 등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아직도 돈을 떼먹는 사장의 사례가 뉴스에 등장하고, 갑질로 피해를 입은 그분들의 얘기를 종종 접한다.


  요즘 청둥오리를 보면서 대한민국에 사는 이주노동자나 국제커플의 미래를 본다. 우리나라가 인구 가장 많이 줄어든 나라로 소문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해결방안이 비 온 뒤 지렁이 길 내듯 쏟아져 나온다.
  해마다 증가하는 인구 감축의 해결방안으로 젊은 남녀가 결혼할 여건 조성이 우선이라는 점엔 동의한다. 집값, 아이들 양육비(교육비) 등에서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내 아이에게 행복한 미래가 주어지는 나라라는 믿음을 주는 정책이 꼭 필요하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 어떤 방안을 내놓아도 믿지 않는다. 한창 치올라갈 때의 경제라면 몰라도. 차선책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겸했으면 한다. 그 방안을 내가 입안한다면 ‘청둥오리 텃새 만들기 기획안’이라 이름 붙이련만...
  그러나 청둥오리가 우리나라에 텃새가 된 과정 가운데 앞에서 언급한 한 가지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하천 오염으로 중금속이 든 먹이를 먹고 몸이 허약해져 다른 나라로의 이동할 만한 활공력을 잃어 포기한다.”라는 점

  즉 그분들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데...' 하는 말은 잠시 물러두고서. 어쩔 수 없이 잠시 머무는 곳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면 적어도 미래에 대한 보장은 있다는 점을 확신하게끔 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청둥오리 한 쌍, 왼쪽은 암컷)



  오늘 아침도 남천내 둘레길을 걷다 보면 청둥오리 가족과 마주칠 게다. 까마귀와 까치와 참새만 보다가 청둥오리, 왜가리, 물닭을 보면 여러 빛깔이 어우러진 모습이 참 이쁘다.  일부러 손을 흔들어준다.
  물론 녀석들은 본체만체하지만. 고 녀석들 고운 모습을 찍고자 하나 워낙 거리가 멀어 휴대폰으로 피사체를 정확히 잡아내지 못해 눈에다 담아둔다. 혹 거닐다 '검은머리갈매기'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같은 세계적 멸종 위기종이라도 본다면 더 없는 수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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