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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햇살 Jan 18. 2024

엄마, 사랑해요.

창밖에는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다. 잔뜩 찌푸린 회색빛 하늘의 거리에는 발길을 서둘러 옮기는 사람들마다 집으로 향하고 있다. 요양원의 저녁에도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의 머리에도 하얀빛으로 빛난다.


그녀는 웃고 있다. 텔레비전 네모난 화면에 현란한 반짝이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는 여 가수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처음 보는 신기한 공연을 보는 사람처럼 그녀는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 있다. 어린아이처럼 미소 짓고 있다. 먼 기억을 잃어버린 그녀는 열 살 아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그녀는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새벽에 나가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머리에 이고 온 양동이엔 상하기 직전의 생선들이 들어있다. 새벽에 생선을 떼어다가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생선을 판매한다. 생선은 쉬이 잘 팔리지 않았다.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그냥 지나가는 이들, 더 깎아달라고 조르는 막무가내 사람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녹록하지 못한 삶 자체가 그녀의 얼굴에 주름살을 만든다. 생선이 팔려야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데, 더디 팔리는 생선의 눈동자가 푸른색에서 회색빛으로 변해 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고 있다. 무거운 생선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그녀는 막냇동생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 엄마가 오기를 기다린다. 젖을 달라고 보채는 아기를 달래며 엄마가 오기를 한없이 기다린다. 저 지평선 해 질 녘의 끝자락에 낯익은 엄마의 가녀린 모습이 보일 때면 기쁜 마음에 아이를 업고 달려본다.


엄마를 와락 안아본다. 엄마의 체취는 온통 생선 비린내로 가득하다. 하루종일 그녀와 함께한 생선은 이제 하루를 마감하고 버려지게 된다. 엄마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린다.


오늘도 변함없이 비린내 물씬 풍기는 생선이 밥상에 오른다. 내장이 터지고 온전한 모양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섯 식구의 배를 채워주는 단백질 급원이다. 엄마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는다. "고맙고 늘 미안하다. 네가 있어서 장사를 할 수 있어서 고맙다.” 엄마는 눈물이 가슴과 눈가에 가득 고인다.


다음날에도 엄마는 새벽에 장사를 나가신다. 그녀는 아기를 업고 다른 동생들을 학교에 보낸다. 친구들은 책가방을 메고 그녀의 대문 앞을 지나간다. 학교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아리다.


떨어지는 눈꽃을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 말한다. ‘학교에 가고 싶어요.’ 흰 눈이 그녀의 목구멍에 깊게 떨어진다. 눈물이 얼음이 되어 눈과 함께 떨어진다. 가고 오지 않는 아빠를 생각하며 한숨짓는다. 어느 곳에서 있는지 엄마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온다.


이제 그녀는 요양원에 와 있다. 과거의 열 살의 기억만 가진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채로 이 자리에 있다. 꿈속이라도 엄마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엄마의 모습도 아련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오직 생선 양동이를 이고 가는 뒷모습만 생각난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이해해요.’라고 말하고 싶다.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현란한 무대의 조명을 바라본다. 여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의 눈에서는 투명한 소금 빛의 액체가 흐른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맙고 미안하다."


사람들의 밝은 얼굴과 미소로 생활실이 밝게 빛난다. 오늘도 하루를 살았음에 감사하며 내일의 하루도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그녀는 기도한다.


창밖에는 어둠을 뚫고 하얀 눈송이들이 쏟아져 내린다. 검은 석탄 가루를 뿌려 놓은 세상을 하얀빛으로 색칠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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