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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햇살 Dec 16. 2023

요양원 영양사의 하루

눈이 내리고 있다. 가벼운 하얀 솜털들이 하나하나 지상으로 떨어진다. 거리에도, 지붕에도 유채색의 풍경이 흰색으로 치환되고 있다. 세상이 깨끗하게 보인다. 내가 입고 있는 흰색 가운처럼

매일 출근과 동시에 하얀 가운을 입는다. 왼쪽 가슴에는 영양사 호칭의 글씨가 검은색 실로 박음질되어있다. 나는 요양원 영양사이다, 이십 년만의 취직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영양사로 십 년을 다녔다. 그사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큰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즈음 퇴사를 하고 전업주부로 생활하였다. 직장 다닐 생각 없이 두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하다가 이십 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절된 시간의 간격사이에도 여전히 세상은 그 형태대로 움직이며 발전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집에서 도보로 십 분이면 도착하는 요양원이다. 요양원이란 곳을 듣기만 했지 관심 없이 무심히 지나쳤다. 집에서 돌보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기관이 돌봐주는 곳이라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층 사무실 유리문을 연다. 출근부에 시간을 기록하고, 하얀 가운을 입고 책상에 앉는다. 컴퓨터의 전원이 켜지면서 식품회사의 전산 시스템에서 검수 일지를 출력한다. 검수 일지를 들고 긴 사무실 복도를 지나 주방으로 향한다.


새벽에 일찍부터 출근한 조리원 선생님의 푸석푸석하고 메마른 미소가 아침의 분주함을 알린다. 아침 식사 설거지를 끝낸 그녀의 손에는 커피믹스를 탄 종이컵이 들려있다. 손등에는 깊은 주름살과 크고 작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아침에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그녀들의 힐링 시간이다.


오늘 입고된 식품들을 검수한다. 배달된 식재료들의 유통기한과 식품 배달 온도와 제품의 신선도를 점검한다. 빽빽하게 써 내려간 식품들 간격 사이에 오늘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주방 안의 온도와 습도를 살펴본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보존식 냉장고 온도를 체크한다. 어르신들의 간식인 요플레의 개수를 세어본다. 플레인 맛과 블루베리 맛, 딸기 맛의 요플레가 쿨러 냉장고 안에 일정하게 줄을 잡고 놓여있다.


게시판에 식단표를 살피고, 조리 레시피를 냉장고에 붙인다. 하루 동안의 식이 종류와 식품 재료가 쓰여있는 매뉴얼이다. 조리 선생님에게 오늘의 요리 작업 지시를 한다. 요양원에서는 모든 식재료를 작게 잘라야 한다. 어르신들이 잘 드실 수 있고, 소화되기 쉬운 음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화기관도 노화되어서 약해지게 된다. 오늘 하루 동안 만들 식자재와 조리법 지시가 완료되면 내 책상에 앉는다.


불투명의 사무실 창문에서는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얼마만큼 눈이 쌓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아침 회의가 기다리고 있다. 회의실 탁자에 수첩을 하나씩 가지고 자리에 앉는다. 아침 회의하기 전에 기도를 한다. 간절한 기도 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신이 돌봐 주시는 요양원, 마지막 인생동안 평안과 안전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어르신들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아침에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보고를 듣는다. 아프신 어르신의 동향을 체크한다. 기침하시는 어르신, 밤새 열이 오르신 어르신, 치매가 점점 짙어진 어르신들의 이야기이다. 꼼꼼히 수첩에 메모하고 어르신들의 식사 보살핌에 반영을 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늙어간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요양원에 들어오면서 노년의 삶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치매가 깊어지면서 더 이상 가족들이 돌볼 수 없어서 요양원에 입소하신 들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는 폭증하고 있다. 이에 요양원과 요양병원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가족들의 부모가 늙어감이 심해지고 케어하는 한계를 넘을 때, 돌봄 서비스를 받는 기관에 보내질 수 있다. 내가 살아온 주거 환경인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픈 소망이 사라질 수 있다.


창 넓은 전경이 보이는 책상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멋진 노년을 마감하는 미래가 어쩌면 꿈일 수 있다는 현타가 몰려온다. 그래도 신이 주어진 삶을 평온한 마음으로 일상을 지내야겠다. 내가 있는 요양원에서도 신이 함께하시면, 그 삶도 행복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요양원 어르신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는 칭찬의 말을 들으면 가슴에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린다. 어르신들을 꼭 안아드린다.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창밖에는 하염없이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내 머리 위에도, 요양원 건물 위에도 그리고 우리 인생의 노년 위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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