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7월의 기록

by 이덕준



1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졌을 때, 일어날걸. 하고 후회했다. 지금은 키보드가 없어 손가락 몇 개로 독수리 타법으로 글을 쓴다. 어디에선가 휴대용 키보드를 팔았으면 샀을 테지만, 당근이라도 해볼 요량이었지만 그럴 시간에 그냥 한 자라도 더 써보다 싶어 그냥 쓴다.



2


알싸한 계절의 냄새가 난다. 겨울이 왔다. 오늘부턴 추운 가을이 아니다. 겨울이다.



3



키보드를 두고 와서 서점을 갔다. 요즘 서점에서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살 수 있다. 키보드는 없다. 있었었는데 이제 없다. 걸음을 이어가 본다. 책을 보러 들어간 것은 아니었는데 책 앞에 서있었다. 작은 집의 작은 책장을 가득 메운 읽은 책, 읽을 책, 읽다 만 책을 떠올리며 읽고 싶은 책에 손을 뻗어 본다. 책을 펼친다. 알알이 옹골찬 단어가 빼곡한 책 사이에서 잉크 냄새가 난다. 11월은 이제 그만. 손을 떼고 다시 서점 밖을 나왔다.


책장 빼곡히 문장들이 들어서 있다. 책 빼곡히 단어들이 박혀있다. 손톱으로 긁어내도 빠질 생각은 하지 않아서 침을 묻혀보기도 하고 집게를 들어보기도 한다. 그래도 탐나는 그 단어들은 영영 제자리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책장을 덮는다. 나의 문장들은 털어내면 옥수수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그중에 어떤 것도 누구라도 가질 수 있다. 나는 무명의 글쓴이고, 무명의 글쟁이가 써 내려간 것은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무명이라 그렇다. 갈증이 생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탐나는 글과 문장과 단어를 발견할수록. 악마가 있다면 생을 다 내어주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그것들이 탐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조금 비참해진 기분으로 빈 뼘 정도 나 되는 휴대폰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놀려본다.




4


사람의 마음은 책 장 갖다. 앞뒤가 다르고 장마다 다르다.


이직을 하겠노라고 말해놓고 그냥 있을 걸 싶기도 하다.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익숙한 감으로 일을 하는 스스로를 자각할 때마다. 텅 빈 잔고를 볼 때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볼 때마다.



5


서울



서울에 간다. 가끔 간다. 서울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냥 서울에.


강남, 강북, 강동구, 강서구도 아니고 여의도도 아니고 은평구도 아니고 송파구도 아니고 그냥 서울에.


서울에 가끔 간다. 서울 대공원도 갔고 궁궐도 종종 간다. 갈 때마다 남편과 아이들과 간다.


남편은 갈 때마다 20대 언저리의 이야기를 한다.

대학 이야기를 하고 그런 나날의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울컥 눈물이 난다. 20대의 내가 얼마나 열심히였는지. 그 불안한 시간을 어떻게 버티고 달려왔는지를 떠올리면 슬퍼진다. 평생을 내내 쉼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도 나는 겨우 여기이고, 겨우 이거밖에 아닌가 싶다.


그땐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이젠 이렇게 산다니.


이룬 게 없는 것 같다.

한 해가 지났는데도 다 흘러버렸는데도.


지금은 일을 하러 공항이다. 그런데 눈앞엔 자꾸

미처 보지 못한 가을의 낙엽이 자꾸만 떨어진다. 흐릿한 하늘이 점점 커다래진다. 눈앞이 노래지고 자꾸만 어지러워서 축축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만 하는 내일이 될까 봐서.



6

좋은 사람이 되려는 이유.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글렀다.

그래도 되고 싶다는 마음엔 변함이 없다.


매일 반성한다. 그리고 노력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좋은 부모는 되어주고 싶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매번 어그러지지만 매번 일어난다. 구깃구깃한 면을 펼치면 아직 네모다. 네모난 마음이다.


꿈은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목표도 있다.


그러니까 언제든, 나를 좋은 사람으로 살게 하는 존재가 필요 없을 리가 없지. 살아야 마땅 이유는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늘 증명해 주는 것이다. 늘.



7


일을 하러 갈 시간이다. 유독 길고 유독 헛헛한 점심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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