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나 마음 같지는 않다. 언제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가도 좋지 않다. 세상은 그마저도 제 것대로 흘러간다.
2
선한 의지가 언제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는 않는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어떻게 살든, 그건 나의 삶의 방향이고 그것이 타인에게 어떻게 다가가 어떻게 결정지을지는 오롯하게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그러니 선한 나의 의지는 나를 벗어나는 순간 의지를 잃게 되는 법이다.
3
먼지
먼지 한 톨 없을 것 같은 곳에도, 빛이 가닿으니 뽀얗게 앉은자리가 보인다. 누군가의 손끝에 닦인 부분의 바로 옆에 뿌연 먼지가 있다. 빛이 가닿고, 누군가 그 곁을 걸으니 바람이 인다. 먼지가 부유한다. 반짝인다.
별인 줄 알았다.
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상의 먼지일 뿐이었다. 나는 빛을 내는 존재인 줄 알았더니, 그저 빛을 반사시키는 물질에 불과했다. 그러나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나는 빛나고 있다. 빛이 없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는 지금 빛나고 있다. 영원토록 주저앉아있을 것 같던 내가, 누군가의 움직임으로 부유하기 시작했고 공의 중앙에 부유하고 있다. 날고 있다. 지금의 사실은 그것이다.
나는 별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빛으로 당신에게 보일 것이다. 나는 한없이 가벼운 존재이지만, 나는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날고 있다. 진실이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다. 모든 사실이 진실이 아닌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탄생에 대하여, 자신의 가치에 대하여, 자신의 의미에 대하여 너무나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산다. 그리하여 ‘이것밖에’ 되지 않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절망한다. 그러나 태초에 우리는 아주 티끌의 존재. 먼지와 다를 것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살아있고, 애쓰고 있다.
4
돌멩이
잔잔했던 연못에 돌멩이가 하나 던져졌다. 그 돌멩이는 연못에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고 가라앉기 시작한다. 끝을 향하여 추락하기 시작했다. 돌이 연못 바닥에 쿵 내려앉는 순간 저 바닥에도 흙먼지가 일 것이다. 수면 위에서처럼 엄청난 파장이, 파동이 일 것이다. 연못은 탁해지고, 그리하여 명백한 것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그 돌멩이가 바닥에 가서 닿은 지 한참 뒤에야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돌멩이 하나가 나의 연못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나의 연못은 탁해지고 있다. 그전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두렵다면 당장이라도 연못에 몸을 던져 그 돌을 건져내면 될 일이고, 두렵더라도 가겠다면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미 돌멩이는 나의 연못에 던져졌으므로,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가 기꺼이 풍덩 소리를 낸다 하더라도, 이미 나는 온통 젖은 뒤일 것이다.
5
이직을 고민한다고 했더니, 어느 사이에 이직을 해야 하는 것처럼 되었다. 이직을 하자고 마음을 먹어 놓고도 막상 가자니 주저하게 된다. 어떤 후회가 더 클까 생각을 해본다. 가지 않은 길에는 미련이 남을 것이고 가본 길은 애틋할 것이다.
6
엄마, 엄마가 더 좋은 일을 하면 좋겠어요.
우주에게 좋은 일이란 뭔데?
주말에 쉬는 일이요. 쉬는 날에 쉬는 일이요.
공무원이었을 때도, 주말에 쉬지는 못했는데. 쉬는 날엔 쉬지 못했는데. 그러나 그래도 그때는 쉬는 날에 일하는 것이 지금처럼 당연한 일은 아니었으니.
7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좋을까. 하고 내내 고민하며 산다. 어떤 삶이 나를 만족시킬까. 어떤 모습이 아이들로 하여금 나를 멋지다고 기억하게 해 줄까.
나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으며, 또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내내 생각해 왔다.
수백의 사람이 산다면 수백의 정답은 각자의 몫으로 결정되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타인은 손가락질해도 스스로는 떳떳하게.
그럴듯해 보이지 않아도 그런 자신이 되어가는 것.
그래서 지금 나는 보잘것없지만 행복하고
그만하면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알고 있다.
보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불행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한가득 품을 수 있는 아이가 있는 나는
품에 가득 차는 만큼의 행복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8
뭐라고 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일을 하러 갈 시간이다. 오늘은 9시 반까지 일을 해야 한다.
9
퇴근 후 잠깐 쓴다.
화요일이 되어야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절벽으로 내달린다.
숨이 턱 끝까지 차기를 반복한다.
발끝이 벼랑 끝에 닿았다.
날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그 순간 세상은 정지하고 앵글은 나를 비춘다.
그러나 발끝만 보이고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벼랑 끝이 시작이 될지
삶의 마지막이 될지 알기 위해서는
내가 날개를 가지고 태어났는지를 알았어야 한다.
무모한 도전인 줄 알았던 것이
도리어 지난 세계를 깨고 나오는 도약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날개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날개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것은 발끝뿐.
날개의 존재는 날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힘주어 발돋움을 하고 나서는 늦는다.
날개가 없다면 내가 날갯짓이라 믿었던 것이
허공의 버둥거림으로 끝날 수도 있기에.
그러나 나는 이미 늦었다.
태어나는 순간, 도약은 시작된 것과 같다.
추락할 텐가, 날아오를 텐가.
이미 결정된 미래의 이야기를
지금은 알 수 없다.
발끝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다.
추락이 시작됐다.
추락할 텐가.
날아오를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