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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Dec 12. 2023

젊은 날의 삶을 반추하며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은 1980년대의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 부천을 실제 모델로 작품화하였으며, 11편의 연작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작품만 따로 읽어봐도 절묘하고 세세한 심리묘사에 마음이 흔들린다. 작가는 원미동이라는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인물을 한 명씩 캐릭터화하여 작품을 썼다. 그 인물들은 작품마다 연관이 있어서 11편을 모두 읽어야 제 맛이 난다. 서울에서 쫓겨나듯 떠밀려 온 사람들은 그곳에서 피 튀기듯 힘들게 살아간다. 그들 삶의 현장을 작가는 원미동에 함께 살며 써 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밀하고 진지하게 전개했다. 


인물, 배경, 상황 묘사를 어찌나 세밀하고 현장감 있게 썼는지 절절히 공감되었다. 1985년생 딸이 있는 나도 이 소설이 써진 시대의 중간쯤에 살았다. 서울 변두리 주택의 방 한 칸에 전세살이를 하다 보니 그 당시 소시민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았고 깊게 공감되고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나도 소설 속에 나오는 같은 시대처럼 가난하고 불안했던 시절을 살았다. 그래,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절묘한 상황 설정과 보통의 인물을 탄생시킨 부분에 나타나는 작가의 언어의 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땅


강 노인 자식들은 아버지가 뼈가 닳도록 일구어 놓은 땅을 쉽게 팔아 사업을 벌인다. 자식들은 아버지 마음을 헤아려 사업을 했겠지만 결국 여러 번 망하게 된다. 땅이 자신의 전부인 강 노인에겐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좋은 것 먹고 싶고, 좋은 옷 입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 가며 아등바등 일궈온 땅을 점점 잃게 되니 죽을 맛이었다. 내가 살던 시골에도 자식들이 땅을 팔아가는 바람에 화병 나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사셨던 이웃 어른들이 많았다. 원미동은 경기도 끝자락이지만 그래도 도시인데~~~. 강 노인은 그곳에서 구린내 진동하는 인분으로 밭을 일군다. 그는 온 동네 사람들의 눈총과 괄시를 받으면서도 끝끝내 땅덩어리를 부여잡고 있다. 강 노인의 마지막 땅이 흡수되고 큰 건물을 지으면 동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 눈에 보듯 뻔했다. 동네가 번화가가 될 것이라는 부동산 사장의 회유가 계속 들어오는데도 강 노인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 악다구니 써가며 농사짓는 강 노인의 모습을 보며 참 가슴이 아렸다. 마치 마지막 땅마저 팔아버리고 수중에 땅이 없으면 삶이 끝나버릴 것 같은 절박한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 부모님도 그런 심정으로 80년대를 살아오셨고 자식들한테 집념을 가지고 사셨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원미동 시인


몽달씨는 시를 쓰거나 읽지 않으면 경옥처럼 할 일 없이 심심하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람이다. 경옥과 몽달씨는 형제 슈퍼 비치파라솔 의자를 공유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경옥은 몽달씨의 시를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서술자로 나오는 경옥은 제 나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딸이라서 죽기를 바랐다는 어머니의 마음을 진즉 알아버린 경옥은 어린 나이지만 살아갈 방도를 알고 있는 듯하다. 호적에 잘못 올려진 출생 년 때문에 제 나이에 학교도 못 갔다. 또래 친구들은 다 학교에 가고 동네 동생들은 유치원에 가다 보니 경옥은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가 된 것이다.

경옥이 언니를 좋아하는 형제 슈퍼 김 반장과 데모하다 군대 제대 후 미친 듯 행동하는 몽달씨는 친구가 된다. 경옥은 어리지만 자기 집의 가정사와 원미동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로 보이지만 어느 어른보다 상황 판단이 빨랐다. 어느 날 셋째 형부 감으로 생각했던 형제슈퍼 김 반장이 깡패들한테 두들겨 맞은 몽달씨를 모르는 체하고 피해버린다. 그 비열한 행동을 본 경옥은 어린이에게 큰 유혹인 군것질감을 포기하고 형제 슈퍼 김 반장을 마음속으로 내쳐버린다. 어린 나이지만 모든 상황을 알아버린 경옥은 폭력 사건으로 열흘쯤 심하게 앓고 나온 몽달씨를 “하루가 꼭 마흔 시간쯤으로 늘어난 느낌이었다.”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김 반장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기를 도와주지 않고 모른 체 한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는 몽달씨. 그는 버거운 세상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어려웠을까? 그래서인지 원미동 시인은 자기의 마음을, 시를 인용해 대변하는 삶을 살아가는 듯하다. 김 반장이 자기를 헌신짝 버리듯 내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들키면 그나마 소일할 수 있는 일거리나, 친구라고 생각하는 김 반장을 공식적으로 잃어버리게 될까 봐, 몽달씨는 자기감정과 상황을 숨기고 살아가는 듯하다. 

몽달씨가 정신이 나간 게 아니라 멀쩡한데 미친 원미동 시인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있겠지, 상상만 한다. 몽달씨는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복잡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거나, 회피하는 사람. 목숨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자기의 신분을 위장해 바보로 살아야만 박해를 피하고 조금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인 것 같다.

몽달씨는 시를 인용해 경옥에게 들려줌으로써 김 반장과 같은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이렇게 작가는 어디에나 있음 직한 인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에도 있고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인물을 만들어 독자에게 끌어내 준 점에 감탄한다.

이런 독특한 설정이 내겐 감동이다.


     한계령


11편의 연작 소설 중 마지막 작품인 <한계령>에서는 화자인 작가의 유년 시절의 삶을 들여다본다. 같은 동네에 노래 잘 부르던 은자한테 화자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은자는 가수가 되어 부천시 클럽에서 노래를 부른다며 화자를 초대한다. 

그녀는 미루다가 마지막 공연하는 날 클럽에 찾아가 은자가 부르는 노래 <한계령>을 듣는다. 그리고 ‘저 산은 내게 잊으라고,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라는 가사는 화자의 깊이 숨겨진 아픔을 절절히 훑어내 린다.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노래에 빠져들었다. 아니 노래가 나를 몰아대었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노래는 급류처럼 거세게 흘러 들이닥쳤다.”

이 부분에선 은자라는 인물이 화자에게 거세게 들이닥쳐 꼼짝달싹 못 하게 옥죄는 듯한 강렬함을 느꼈다. 책을 읽는 내 숨도 거칠게 헐떡거렸다. 

화자는 이후 은자와 대면하지 못했다. 화자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큰오빠와 엄마가 동생들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화자는 한계령 가사에서 큰오빠의 힘듦을 느꼈고 급기야 그 장소를 박차고 빠져나와 버린다.

며칠 후 은자가 전화를 해서 왜 안 왔냐? 독하다고 말한다. 화자는 끝까지 네가 노래 부르는 클럽에 갔고, 네가 한계령이라는 노래를 불렀지?라고, 되묻지 않았다. 그 점이 이 글을 더 극적인 장면으로 도달시키는 작가의 힘인 것 같다. 나는 작가와 함께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에서 마치 거친 숨을 참으며 산꼭대기까지 좀처럼 도달할 수 없어 애타는 꿈 속에서 헤매듯이 이 부분까지 함께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은자가 오픈할 좋은 나라 카페를 찾아갈 것인지, 좋은 나라에 들어가 만날 수 있게 될는지 그것이 불확실할 뿐이다.” 마지막 오픈 결말까지 모두 격정적이고 신비로웠다. 작가는 모든 세상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마지막 문장에까지 담아 놓았다. 작가는 글을 써서 은자는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성장해 간다. 80년대의 전체적으로 보통 도시 변두리 삶을 보이는 대로 써낸 양귀자 작가님. 저 밑바닥에 쌓였던 감정을 맨 손가락으로 긁어모은 듯한 아픔이 처절하게 느껴졌다.


80년대의 나는 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추진할 수 없었다. 우리 서민들이 애환 가득한 삶에서 조금이라도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돌파구일 뿐이다. 다른 사람을 챙기고 화합하고 보듬고 나가기에는, 내 목숨 내 가족을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나도 양귀자 작가와 같은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그때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도 엉망진창이었다. 젊은이들의 머릿속을 뒤흔들어 멀쩡하게 살아가기 힘든 격정의 시대였다.

그렇지만 양귀자 작가의 경우는 모든 상황을 직접 본 듯한 공간에서 체험한 듯 현장감 있게 묘사한 점이 특별히 인상 깊었다. 그래서 더 많은 독자가 공감하고 역사적인 의미로도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미동 사람들과 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나의 삶은 불안하고 힘든 세월을 이겨낸 보통 서민들이 끝까지 살아온 과정을 잘 지켜준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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