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에서 열리는 2024년 국제 도서전에 갔다.
몇 년째 이런 훌륭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몰랐다. 후배들 따라나서길 참 잘했다.
처음엔 너무 방대해서 어떻게, 어디서부터 관람해야 할지 몰라 후배를 졸졸 따라다녔다. 순간 그녀를 놓쳤다. 그제야 눈앞에 여러 종류의 수많은 책이 보였다. 이 책 저 책 둘러보다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는 제목과 표지가 눈에 띄었다.
‘나이 들어도 가슴 뛸 일이 생겼다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가슴을 뛰게 한 것일까?
가슴이 뛴 게 아니라 부정맥으로 심장이 뛰었다는 것인가?’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생각만 해도 심장은 두근거린다.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그런 것이 아닌가?
“부정맥이란 심장의 정상적인 리듬이 흐트러지는 상태로, 심장이 너무 빠르게, 너무 느리게, 또는 불규칙하게 박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정맥은 노화로 인해 전기신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하 노화 때문에 맥박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는 거였구나! 씁쓸했다.
블로그에 매일 몇 편씩 「하이쿠」를 쓰는 지인이 있다. 하이쿠는 5-7-5 총 17자로 짧게 구성된 일본의 정형시다. 내가 국제 도서전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책은 하이쿠의 모음집 같았다. 그는 사물, 꽃, 나무, 돌 등 자연에 대해서 하이쿠를 쓴다.
‘센류는 실버 세대들이 쓰는 그런 정형시인가?’ 궁금했다.
하이쿠는 자연에 대해, 센류는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주제로 쓴다고 한다. 앞으로 나에게도 일어날 법한 상황, 실버 세대의 일상과 생각을 정형시로 담아낸 것이 웃음을 자아낸다. 초 고령화 사회의 일본 실버 세대에 대한 여러 가지 문화와 물품, 제도, 정책 부분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2025년이면 대한민국도 65세 이상 노인이 총인구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젊은이들 살아가기도 힘든데 노인들 3~4명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며 매스컴에서 연신 떠들어 대는데 기분이 언짢다.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기대어 살아야 한다고? 당치도 않는 소리다. 내 삶은 내가 책임지고 싶다.
일본의 실버 세대에 대한 정책과 문화는 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크다. 나무를 심자, 불조심 예방, 교통안전에 관한 표어처럼 일본에는 “센류 공모전”이 있다고 한다. 실버 세대들의 생각과 상황을 담아낸 일상을 쓴 시 공모전이다. 책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은 책은 센류 공모전에 당선된 글 모음집이었다. 현재 내 상황과 비슷하고 미래 내 모습을 담은 시들이라 공감이 갔다. 책에서 읽었던 몇 개 특유의 운문시가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서로를 돌보다가 다시 한번 싹트는 부부애”
너무 웃겨서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며칠 후 생각나 아침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비몽사몽 하는 남편에게 읽어줬다. 남편은 평소에도 웃음기 없는 사람으로 잘 웃지 않는다.
나한텐 너~무 웃긴 표현인데...
좀처럼 웃지 않아서 남편의 귀에 바짝 대고
“서로를 돌보다가 다시 한번 싹트는 부부애” 라며 큰 소리로 읊었다.
여전히 시큰둥하니 반응이 없다.
나는 신나서 가족 카톡 채팅창에 사연을 올렸다. 책에 관한 검색 해서 다른 시도 공유했다. 큰사위한테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시 한 수가 날아왔다.
“효도인 줄 알았는데 대리 육아”
크~~~ 악, 센스가 기가 막히다. 폭풍 칭찬했다. 사위는 짧고 명쾌한 즉문즉답을 잘한다. “손자녀 돌보는 모든 조부모님 사랑합니다.”라는 댓글도 남겼다. 큰사위는 함께하는 놀이에 빠르게 반응하고 장모님이 놀려도 항상 생글생글 잘 웃어줘서 고맙다.
나는 딸과 사위를 대신해서 육아하고 있다. 자식들의 힘듦을 덜어주기 위해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 때로는 ‘손주들이 조부모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주와 함께할 때 아슬아슬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도 많다. 하루 종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손주들은 내가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활력소다. 자주 웃는 상황을 만들어 줘서 행복하다.
제목에 이끌려 읽고,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공감 가는 시들이다.
“손가락 하나로 스마트폰과 나를 부르는 아내”
“영정 사진 너무 웃었다고 퇴짜 맞았다.”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고 있다.”
“할멈 개한테 주는 사랑, 나한테도 좀 주구려.”
“젊어 보이시네요. 그 한마디에 모자 벗을 기회 놓쳤다.”
“비상금 넣어 둔 곳 까먹어서 아내에게 묻는다.”
“이 나이쯤 되면 재채기 한 번에도 목숨을 건다.”
읽어 가는데 웃기고 슬프기도 해서 한 시구씩 가슴에 새겼다.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아서 다정한 느낌도 들고, 슬프기도 하고, 왠지 짠하기도 했다.
100세 넘은 김형석 교수는 “65~75세 사이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한다.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경험한 장년기야말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삶의 지혜와 여유가 묻어난다.”라고도 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상황을 시로 접하니 머리가 쨍하다. 어떻게 무엇을 하며 노년을 즐기며 살아갈지 상상해 본다. 어른들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이다. 나는 오후에 출근해서 손주들을 돌볼 수 있는 일이 있다. 어느 것보다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을 하러 갈 곳이 있다. 그렇다면 ‘할 일을 준 대리 육아는 효도인가?’
끊임없이 뱉어내는 말 표현과 예쁜 몸짓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깨우쳐주고 감동의 도가니로 빠지게 하는 손주들. 눈이 감기도록 활짝 웃는 모습이 귀엽고 애틋해서 눈물이 맺히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효도인 줄 알았던 대리 육아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커 가면 이런 행복한 순간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게 된다. 나에게 허락된 지금, 손주를 돌보는 동안만이라도 후회 없이 사랑을 듬뿍 쏟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