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간 회원권으로 일 년 치 운동하는 기분을 샀습니다.
학창 시절 나는 소위 말하는 착실한 아이였다. 선생님의 시답지 않은 농담까지도 꼼꼼하게 필기하고, 방과 후에 학원, 주 2회 개인교습,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인터넷 강의도 꼬박 챙겨 들었다. 유능한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 순간만큼은 지식이 넘실넘실 차올라서 전교 1등 부럽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착실한 태도와는 다르게 시험에서는 온갖 정답들이 나를 피해 다녔다. 그저 실전에 약한 불운아로 각인되어 갔다.
브런치 작가 합격을 계기로 머릿속을 유영하는 두서없는 생각을 끄집어 글로 정리해 가며, 나는 왜 그토록 착실한 모지리로 남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했던 것은 공부가 아니었다. 남들에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심리를 수업이라는 돈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고쳐진 사람은 쓰는 것이지.
유년기에는 돈으로 공부하는 기분을 사더니, 어른이 되어서도 겉보기에만 착실했던 내 삶의 태도는 쉬이 변하지 않았다. 부쩍 오른 살로 피트니스 센터를 찾았다. 회원권은 한 달에 7만 원. 연간으로 등록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운동이 사치스러운 일도 아니고 내 건강을 위한 투자라고 묵인하고 덜컥 구매했다. 작심 3일이라도 갔으면 좋으련만, 주말에 실컷 먹고 매주 월요일만 회귀하는 마음으로 운동을 했다. 이번에도 나는 연간 회원권으로 운동하는 기분을 샀다. 피트니스 센터에서도 운동하는 기분을 일 년 치 뭉탱이로 팔아치워도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을까? 으레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는 기분을 본질보다 더 중요시 여기며 살아가나 보다. 생소한 무언가를 체화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고, 지루하고, 길다. 이러한 힘듦의 과정을 겪고 나서야 터득하게 되는데, 나는 과정은 요리조리 피한 채, 세상 모든 것을 겉핥기식으로 척만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