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요즘 제 몸이 제 몸 같지 않고 제 마음이 제 마음 같지 않습니다. 사업(事業)을 하면서 요즘처럼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업의 사전적 의미가 “생산과 영리를 목적으로 지속하는 계획적인 경제 활동”이지요. 이 사전적 의미에 <사람>이란 말은 없지만 <사람>이 핵심인 것을, 사람이 사람을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이 안 옵니다.
지역 역량강화 사업의 핵심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번듯하고 좋은 H/W 시설물이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채워질 S/W가 부족하면 H/W 시설물은 존재 이유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 지역 역량강화 사업 제안할 때 들어설 시설물을 100%를 넘어 무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안합니다. 그래야 사업 종료 후에도 그 지역 주민이 시설물을 지속적이면서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당초 목표한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벽에 부딪혔습니다. 발주처에서 ‘제안서에 제시했던 콘텐츠는 지금까지 진행한 걸로 마무리하고 예산을 다른 용도로 돌려라’ 압박합니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을 갈라치기도 합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손에 잡히지 않은 S/W 무형자산보다는 직접적으로 손에 들려주는 곶감이 낫겠지요.
마을을 먹여 살릴 수도 있는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시간을 주민과 이마를 맞대고 논의했고, 이제 겨우 좋은 열매가 맺힐 꽃이 폈는데 꽃을 싹둑 잘라버리려 합니다. 마을에서 구전되는 전설을 오늘 우리에 맞는 이야기를 더해 스토리텔링을 하고, 무형의 스토리텔링이 유형 자산으로 변화되는 중요한 시점에서 말입니다.
영혼을 다 바쳐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지는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위가 계란을 치러 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저는 바위를 어떻게 막아야 <마을이 키운 계란>이 깨지지 않을까 전전긍긍 애를 태웁니다.
눈물겹게 부러운
부럽습니다. 맑은 물에 반해 별이 빠졌다는 달맞이 서당골 마을에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을 원천소스로 스토리텔링을 해서 부자 마을이 된 전남 순천 문성(文星) 마을이 뼈 때리게 부럽습니다.
전남 순천시 주암면 문성(文星) 마을은 '물이 맑아 별이 퐁당 빠진 마을'이라는 구전이 전해져 온다. 주변 환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과거 문성마을 서당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 '서당골'로도 불린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이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20여 년 전부터 젊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고 남아있는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마을 발전에 활력이 떨어졌다. 한 때 100여 명이 넘던 마을 주민은 42명(26개 가구)으로 줄었고 주민 평균 연령은 72세가 됐다. 이덕성 문성마을 대표는 "농번기가 돼도 일할 사람이 없다. 날이 갈수록 마을은 방치됐고 주민들의 삶까지 위협받게 됐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마을 생존을 위한 고민이 시작됐다. 주민들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 나가자고 뜻을 모았다. 주민끼리 서로 돌보는 배려와 동행의 자세로 함께하는 자립마을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마을의 전통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 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또 현세대의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 넘겨줄 수 있는 마을을 지향했다.
2009년 농촌 희망 심기 운동을 시작으로 마을 규범(2011년·문성마을 사람들의 약속)을 제정한 주민들은 3차에 이르는 마을 가꾸기 15년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그 사업의 주체로 2014년 '농업회사법인 서당골(주)'을 출범시켰고, 지역 특산물인 콩을 소재로 옻된장을 만들어 마을 공동 수익 기반을 다졌다.
옻나무 숙성 된장 판매는 마을 소득의 60%를 차지하는 주요 소득원 일이 됐다. 농업회사법인 서당골은 수익금의 30% 이상을 마을 기금으로 적립해 마을 가꾸기 사업에 충당하고 있다. 서당골은 주민들에게는 건강한 100세 시대를 위한 평생직장으로 하루 2시간씩 주 5일 근무하는 소중한 일터다.
출처; 머니투데이 순천(전남)=정혁수 기자
전남 순천 문성마을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부자 마을이 되는데 무려 6년이나 걸렸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간 덕분입니다. 만약 그 마을 사업에 ‘바위로 계란을 치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주민만의 몫은 아닙니다. 지원하는 관(官)도 간절한 마음이어야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힘
지금은 모든 지자체와 마을이 더 잘 살기 위해서 경쟁하는 시대입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 이야기까지 나오는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문화 전쟁 경제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은 무수히 많습니다. 가장 좋은 전략만을 골라 쓴다고 해도 장수(將帥)가 흔들리면 필패합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에도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사람을 쓰면 그를 믿어 의심치 말라’했습니다. 지역 역량 강화사업에서 관(官)은 장수를 임명하는 임명권자입니다.
손자병법 모공 편에 적지(敵地)에 군대를 보낸 임금이 저지르는 잘못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군대가 진격할 능력이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진군을 명하는 일, 두 번째가 군대 내부의 정황을 모르면서 군대 일을 간섭해 장수와 병졸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 세 번째가 장수를 믿지 못해 흔들어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겁니다. 임명권을 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믿는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병법을 잘 아는 사람은 ‘장수를 부리는 건 그 사람을 믿는 것이다’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지켰습니다. 윗사람의 신임은 아랫사람의 동력을 촉발하는 가장 좋은 자극제입니다. 오늘 저는 저를 압박하는 거대한 벽 앞에서 새로운 문을 만들 작정입니다. 벽을 넘을 수 없으면 문을 만들면 된다는 말, 계란을 치는 바위를 비껴갈 수 있는 해법이 되기도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