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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Jan 02. 2024

행복의 조건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서

앉았다 일어나면 뼈마디에서만 우두둑 소리가 나는 게 아니다. 심장에서도 우두둑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말랑하게 리듬을 타던 심장 박동 소리를 느껴본 게 언제더라? 애써 떠올려 보려 해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명을 잉태하던 강인한 힘도 차츰 소멸하고 탱탱한 피부도 윤기를 잃어 주름이 깊어지려 한다. 존재 자체로 찬란하게 빛나던 젊음이 휘발한 자리에 대신 찾아든 건 낮아진 자존감.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자신감도 잃어버려 남모르는 곳으로 깊이 숨고 싶을 때가 많다. 


꼬마 눈사람

함박눈이 내렸다. 서울에 42년 만에 대설이라더니 순식간에 서울이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아기 주먹만 한 소담한 목화송이가 지상의 허물을 덮어주듯 소복소복 쌓인다. 눈처럼 나풀거리고 싶어 동네 공원으로 나갔다. 눈이 내리면 모두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는지 동심(童心)의 마음을 담아 부지런히 아기 눈사람을 만들어 곳곳에 세워 놓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맘에 깃든 순백의 평화. 


함박눈 내리는 날이면 마음 깊은 곳에서 되살아나는 추억이 있다. 오늘처럼 눈이 내렸던 날, 우리는 눈을 맞으며 한참을 걷다가 추위도 녹일 겸 추로스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때는 츄러스 가게가 유행했다. 시린 손을 비비며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의자 두 개와 일인용 테이블 한 개가 놓여 있는 아주 작은 가게는 동화적인 분위기가 느껴질 만큼 아담했다. 그림 동화책 삽화 속에 우리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작은 의자가 비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입 안 가득 달달한 계피 향을 머금고 창밖을 보니 마치 눈송이가 유리창을 뚫고 내게 와 안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눈이 내리면 츄러스가 생각난다. 아니 츄러스는 함박눈이 내리는 날 먹어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스스로 공식화했다.     

 

그날 이후 처음 찾은 그 츄러스 가게, 여전히 그 가게는 작지만 품이 넉넉했다. 세월의 고운 때가 덧입혀진 정감 있는 소품들 덕분에 츄러스 가게가 미니 포레스트처럼 느껴졌다. 요즘 우리는 미니 포레스트 영상을 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가끔 미니어처 제품을 구입해 하우스를 만들기도 하는데 꿈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고 싶어졌다. 작은 카페에 앉아 츄러스를 한입 베어 물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싶은 이들이 무시로 찾아와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아 행복했다.   

  

함박눈이 내렸을 뿐인데, 눈을 벗 삼아 츄러스 가게에 들렀을 뿐인데, 웃음기 없이 메마른 내 얼굴이 화색이 돌았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듯 우두둑 소리 나던 푸석해진 뇌세포를 살려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도 잠시 벗어났다. 격식 없이 누리는 영혼의 자유. “그래 바로 이거야!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멀리 있지 않아. 의외로 소소한 일상들에서 찾아오는구나”  


지금 나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성의 촉수를 살리는 일, 함박눈을 맞이하며 소소한 일상에서 찾아낸 행복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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