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청보리밭 축제로 경관 농업을 열다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보는 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1순위로 고려하는 게 해당 지자체에 당장 채워져야 할 분야 선정과 최적화된 전문 강사 초빙이다. 전문 강사 초빙 기준은 그분이 해당 분야에서 어떤 혁신적인 결과를 내놓았는지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서 첫 단추를 어떻게 채웠는지를 본다. ‘공무원 혁신 디자인 스쿨’을 진행하기 위해 수요조사를 해보니 지역 정체성을 반영한 축제 콘텐츠 개발을 원하고 있었다. 이때 초빙한 전문가가 김가성 콘텐츠 작가다. 이분은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보는 힘 통찰력을 지닌 전문가다. 눈앞의 사물을 보고(視) 생각(見)으로 연결하여 그 사물이 드러나도록 관(觀)이라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관광(觀光) 상품으로 만든다.
김가성 작가가 만든 대표적인 상품이 ‘고창 청보리밭 축제’다. 농업과 농촌 경관을 결합한 ‘고창 청보리밭 축제’는 우리나라 경관 농업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고창 청보리밭 축제’ 이전에도 농촌 경관은 거론되었다. 그러나 관광상품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농촌 연구서 안에 박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가성이란 7급 공무원이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색 보리밭을 ‘고창 청보리밭 축제’라는 이름으로 턱 하니 우리 앞에 펼쳐 놨다. 이때가 2004년 4월. 제1회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열리자 축제 현장인 고창군 공음면 학원 농장은 물론 고창군 전체가 들썩였다. 언론에서는 축제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썼다는 내용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KBS에서는 특별취재반을 편성해 축제를 무려 한 시간에 걸쳐 생중계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고창이 청보리밭 고장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고창을 찾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김가성 작가가 ‘고창 청보리밭 축제’를 꿈꾼 첫 단추는 무엇이었을까? ‘고창 청보리밭 축제’의 출발점은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이었다. 그해 초여름, 가족과 함께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 파라과이의 경기를 보러 갔는데, 아들이 축구장 초록색 잔디를 보고 “아빠, 운동장이 꼭 양탄자 같아. 한번 뒹굴어봤으면 좋겠다!”라고 감탄했다. 이 한마디가 축구선수에 집중했던 그의 눈(視)을 초록색 잔디로 돌렸고 고창 보리밭으로 생각(見)을 이끌었다. 그리고 2년에 걸쳐 고창 보리밭이 세상에 드러나도록(觀) 힘을 불어넣고 고창의 관상(觀相)을 바꾼 것이다. 사람처럼 지역의 운명도 관상을 따라간다고 본다.
김가성씨가 3천만 원이라는 적은 예산으로 ‘고창 청보리밭 축제’를 성공시키자 공무원들 사이에서 ‘큰일을 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다른 시·군 공무원들이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만나기를 청하기도 하고, 성공 사례를 발표하기 위해 경북 안동, 경남 창녕, 충남 서천 등지로부터 초청받아 강연 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강연하고 사람들 앞에서 내세울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보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 인정받는다는 게 더 기뻤다”라고 말한다.
퇴직 후, 대한민국 관광 콘텐츠 개발로 더 바쁜 이 사람
김가성 작가는 면장직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지금 현직에 있을 때 보다 더욱 왕성하게 활동한다. <100만 관광 콘텐츠 연구소>를 설립 콘텐츠 작가라는 명함을 들고 전국을 누비면서 고창의 관상을 변화시켰듯이 많은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요즘 김가성 작가와 농촌축제 콘텐츠 개발과 지역축제 활성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경관 농업, 다시 말해 농촌축제가 성공하려면 인위적인 포토존을 지양하고 영상미가 철철 넘치는 자연스러운 포토존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사진은 다 찍어줬다는 김가성 작가답다.
추억을 남기고 싶은 장소에 가서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이유는 남긴 사진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영상이 대세인 시대 영상미 철철 넘치는 한 장 사진은 수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는 매개체가 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사진은 다 찍어줬다는 김가성 작가의 대표 작품은 단연코 고창 청보리밭이다.
김가성 작가는 “공무원이 비즈니스에 나서면 나라가 바뀐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공무원의 능력이 곧 국민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시대’라는 그의 생각은 내 생각과도 일치한다. 그래서 김가성 작가와 함께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보는 작업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