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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는 마을

마을 시집을 내며

by 홍안유

교보문고 창을 열고 검색어를 넣었다.
‘시가 사는 마을.’

익숙한 듯 낯선 이 조합.
다시 구글 검색창에 같은 문장을 입력해 본다.
‘시가 사는 마을.’

화면에 뜨는 검색 결과.
국내도서〡시가 사는 마을〡백우리 문우회〡교보문고
그 아래에는 시집 출간에 대한 보도기사들이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내 마음에 등불 하나 켜는 일이다.”


― 『시가 사는 마을』 책 소개 중


백우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편의 시집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시집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엮은 서사시였다.

시를 처음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날, 마을회관은 순식간에 문우회의 작업실이 되었다.
화투장을 쥐던 손이 연필을 잡고, 고스톱 대신 운율을 맞추기 시작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일상은 어느새 시어를 향해 걸어갔다.
소를 몰던 발걸음으로 시집을 향했고, 장독대 옆 밥상머리 대화가 시의 소재가 되었다.

“너 오늘 쓴 거 가져왔나?”
“이 문장이 더 좋지 않겠어?”
“에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툭툭 던지는 농담 속에도, 시심은 흐르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 위로 번지는 웃음은 마치 복사꽃처럼 밝고 순수했다.


사실,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시 쓰기 프로그램을 처음 제안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어르신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시가 살고 있었다.
그저 누군가, 그 시를 꺼낼 수 있도록 도와줄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첫 수업 날, 이장님은 연필을 잡은 채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심스레 이렇게 말했다.
“글이란 걸 써본 적이 없소. 근데… 보이는 것들이 모두 시어처럼 왜 이렇게 떠오르는지…”


그날 이후, 마을의 풍경이 달라졌다.

어르신들은 풀방구리 드나들 듯 마을회관을 찾았다.
밥상머리엔 ‘오늘 시어가 떠올랐다’는 이야기꽃이 피었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이웃주민들도 “할머니, 오늘 시 썼어요?” 하고 묻는다.

티격태격하던 노부부도, 시를 쓰다 보니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단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써온 시를 낭독했다.
“칠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 생각하면

열 살짜리 꼬마가 운다

해는 떴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
그 시에, 할아버지는 말없이 눈가를 훔쳤다.


이제 백우리는 ‘시가 사는 마을’이 되었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게 번진 시심은, 마을 전체를 감싸 안았다.
글쓰기를 배우지 못했지만 마음을 배운 분들이라 그런지,
그들의 시는 투박하지만 진실했다.
꽃보다 아름답고, 바람보다 자유로웠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꼬꼬댁 닭 우는 소리, 휘청거리며 장터로 향하던 김 씨 아저씨의 뒷모습,
장을 익히는 장독대 옆에서 제비가 날아오르던 그 풍경.
그리고, 흙냄새 속에 묻혀 있던 시 한 구절.


시가 이 마을에 산다는 건,
이 마을이 시처럼 살아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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