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arami’s Diary(28)
10월 25일
한국에서의 나는 점점 잊히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의 연락이 뜸해지고, 연락을 해도 반가움의 농도가 옅어진 것 같다.
항공기 직항으로 9시간 거리, 시차는 3시간 반.
그들과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가 마침내 동일해진 것 같다.
그들은 바쁜 것 같다. 여전한 일상을 사느라,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겨울을 대비하느라.
그래서 이제 내 생각 안 하지 너네?
주말이면 으레 한국의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말을 건다. 사실 나도 딱히 할 말이 없다. 한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방학을 했노라고 말을 하면서도, 스리랑카에서의 방학이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다. 할 말이라고는 '건강 잘 챙겨라', '돌아오면 얼굴 보자'뿐이다. 이런 말을 하면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야 연락을 해야 될 것 같다.
서운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잊히기를 바란 적이 있다. 다 지겹다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면 좋겠다고,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만 나를 기억하면 좋겠다고, 그들 외에 누구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누가 나를 기억할 것인지를 따져보았다.
사회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시절에 나는 더 나쁜 것을 더 간절히 바랐다. 모두에게서 잊히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모르면 좋겠다.
이 한때의 소원이, 잊고 있던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서운하지 않다. 그들의 탓이 아니다.
언젠가 빌었던 다른 소원들도 하나둘 씩 기억이 난다. 한 번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때 선생님이 되는 게 장래희망이었던 적이 있다. 지금 스리랑카에 살면서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니 소원 둘이 이루어졌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바랐던 모든 소원들이 어쩌면 늦더라도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 새소리를 들으면 커피를 마시고 있다. 누구도 나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는다. 책장을 펼쳐둔 채 과거를 회상한다.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순간을 바란 적이 없을 리 없다.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과거의 어느 날 내가 빌었던 소원의 성취인 것이다.
네 살이나 일곱 살의 어리숙한 내가 엄마에게 엄청 혼나고 나서 엄마가 없는 데서 살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그 소원은 이미 십 수년 전에 이루어졌다. 전생에서의 나는 죽고 못 사는 동무가 있었고 다음 생에서 꼭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빌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스리랑카 사람들 중 누군가는 전생의 그 동무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방인인 내게 그렇게 유독 다정할 수가 있나.
내가 빌어버린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서야 내 삶은 끝나는 게 아닐까. 이번 생에 이루지 못한 것은 다음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나는 억겁의 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 어리석고 앞뒤 없던 시절의 내가 뭘 바라고 누구에게 빌었는지를 점검해보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너무 오래 살았고, 너무 생각이 많았다. 이미 늦은 것 같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한때 지구 다 망해라, 다 같이 멸망하자, 나 혼자는 못 간다,라는 생각을 꽤 자주 했다. 이제라도 좀 좋은 것을 빌면 상쇄가 되려나. 뭐가 됐든 그만 바라고 생각을 좀 줄이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