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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Jan 29. 2024

나는 해변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지.

Ppaarami’s Diary(31)

11월 15일


  저녁에 해변에 있었다. 이틀 전, 집에서 미리사에 갈 채비를 하면서도 모래사장에서 발자국을 찍고 있을 내 모습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머릿속에는, 선크림과 우산을 잘 챙기고, 페타 버스정류장에 가서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를 타고 마타라에 내려서 웰니스리조트로 무사히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미리사의 바다는 11월부터 예쁘다는 정보만 듣고 출발했다. 해변 같은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바다에 왔으니 당연히 해변이 있었다. 해변과 멀어져 있었다. 해변에 다시 오고서야 내가 해변을 좋아했었다는, 좋아하는 해변이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이십 대의 어느 날에 우연히 발견한 해변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젖소 모양 조형물이었다. 론리플래닛에서 낙농업이 발달한 국가라는 정보를 읽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포르투갈은 나에게 우유와 치즈가 맛있을 나라가 됐다. 그래서 아마도 첫 끼니는 우유와 치즈를 넣어서 만든 빵이었을 것이다.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한 교통수단은 기차였다. 포르투갈에서도 나는 기차를 탔다.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차를 잘 타고 가다가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내렸다. 애초에 어디를 가려던 것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린 곳에 바다가 있었고 해변을 따라 조금 걸었다. 정오에 가까운 오전의 바다는 눈부셨다. 몹시 눈이 부셨다. 모래는 아스팔트보다 더 큰 중력을 지닌 것 같았다. 해변을 걷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모래밭에 앉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았다. 점점 맹렬하게 바다를 보았다. 나는 바다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바다를 보고 또 보았다. 해가 질 때까지.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째서? 그저 바다를 보면서 좀 앉아있었던 것뿐인데 해가 지다니. 낯선 곳에서 어둠을 만나는 건 위험한 일이다. 서둘러 해변에서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갔다. 서두르는 와중에 나는 뒤를 돌아 수평선을 보았다. 하아, 그 하늘의 색이란. 뒤돌아 본 덕에 그 해변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카스카이스. 

  그 이름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윤슬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바다에는 모래사장과 갯벌과 파도와 생선 말고 반짝임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뒤로 나는 바다의 반짝임을 좋아한다. 바다에 가면 물결부터 탐닉한다. 어디 얼마나 반짝이는 바다인고? 하며 눈으로 물결을 어루만진다. 일렁이는 물결은 수은 같기도 하고 수천 갈래로 갈라져 흔들리는 띠 같기도 하고 프렉탈 같기도 하고 만다라 같기도 하다. 한참 보고 있으면 그것은 어떤 이미지를 제공한다. 계속 더 보고 있을 수밖에 없도록.


  바다를 누볐던 사람들 중에는 정복, 만선, 탐험, 탐구를 목적으로 삼은 이가 있었다. 또한, 바다를 관람하려는 목적으로 긴 항해를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부로, 탐험가로, 과학자로, 군인으로 배를 탔지만 마음속으로는 바다의 물결과 반짝임을 상상하며 설렜을 선원이 항해의 역사 중 하나는 있었겠지. 실은 하나보다는 훨씬 더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들이 바다에서 바다를 사랑한다면 나는 바다를 감싸 안고 있는 해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해변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바다에 떠있고 싶지는 않다. 반짝이는 바다를 좋아해서 해변을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를 연결해 주는 포용적인 것들. 


  나는 주로 이런 것들을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카페를 사랑한다. 이런 식으로 한글을 사랑하고, 인간의 착한 마음을 사랑하게 됐다. 해변에 여행자의 귀한 하루를 통째로 바친 것처럼, 내 시간을 바치는 방식으로 이런 것들을 사랑한다. 이십 대의 그날처럼 완전히 매혹되어 시간과 공간과 나 자신마저 잊는 일은 더는 없겠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내 어딘가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잊어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어서, 길을 가다 커피 향을 맡으면 반드시 돌아보고 매일 글을 읽고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를 한다.



 


  미리사의 해변에는 식당이 즐비하다. 식당은 입구와 천장과 두 개의 벽면이 있다. 바다 쪽에는 벽이 없다.  바다를 보며 식사를 하고 칵테일을 마실 수 있게 되어있다. 바다에서 해가 지고 바다와 주변 공간이 검게 물들고 비다 위로 비가 내리고 또 그친다. 파도는 지칠 줄 모르는 퍼포먼서이고 바다를 찾는 관객의 발걸음은 밤늦도록 이어진다. 나는 해변의 식당에서 밥한술을 입안 가득 밀어 넣고 한참을 우물거린다. 그렇게 천천히 식사를 하고 천천히 음료를 마시노라면 저 바다에 지금 들어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한 번쯤은 든다. 바다는 검다. 저 바다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볼 수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완벽하게 낯설고, 어두운 곳이겠지. 기분이 어떤까. 이런 생각이 들면 이제 집에 가야 한다는 신호다.

계산서 좀 주세요. 


  계산을 하고 의자를 밀어내고 바다를 등지고 도로로 나선다.  한동안 해변이니 바다니 하는 것들을 잊고 살겠지만 언제든 다시 만나면 다시 또 뜨겁게 사랑할 것이다.     



인도양의 돌고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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