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arami’s Diary(36)
2023년 11월 28일
오늘도 활짝 노트북을 펼쳤다. 인터넷 첫 화면은 bing이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됐는데, 그냥 내버려 두었다. bing은 스리랑카소식과 미국, 영국, 프랑스 등등 각국의 소식을 전해준다. 전체 페이지를 힐긋보고 내게 필요한 페이지로 이동한다. 한 번도 bing이 골라준 소식들을 클릭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눈이 번쩍 뜨이는 배너를 발견했다.
[Makola 빌라 분양 중,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런데 나의 손은 이미 구글로 이동하라는 명령어를 입력해 버렸다. 페이지가 넘어갔다. bing에서 google로.
구글에서 뭘 하려던 건지 잊었다. 나는 마콜라 빌라 분양에 꽂혔다. 빌라 분양이 아니라 마콜라에.
마콜라는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30분쯤 걸리는 동네이다. 마콜라에 있는 식당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가기 전에 식당 위치를 확인하느라 몇 차례 검색을 했었다. 그러니까 나와 아주 약간의 관계가 있는 곳이다. 관계가 거의 없는 곳이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bing이 나에게 지구상의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마콜라의 빌라 분양을 추천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bing 이 자식, 내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다 알고 있는 건가?
'뒤로 가기'를 눌렀지만 페이지 구성이 달라졌다. 인터넷을 끄고 다시 접속했다. 두어 차례 반복해서 다시 그 마콜라 빌라 분양 배너와 만났다. 클릭했다.
결과는 별 게 없다. 그냥 흔한 부동산 사이트로 연결됐다. 몇 번 더 클릭을 해보았다. makola라는 구체적인 지명은 사라지고 전 세계의 부동산 매물을 검색할 수 있는 UI가 펼쳐졌다. 빌라든 뭐든 건물 구매 의사가 없는 나에게는 그냥 망망대해다.
bing은 왜 나에게 저 문구를 보여주었을까. 스리랑카에 처음 왔을 때 집을 구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부동산 중개 온라인 사이트를 들락날락했었다. 주요 검색어는 켈라니야였다. 마콜라를 검색한 적도 있지만 한두 번쯤이다. 한식당을 찾으려고 구굴에서 두어 번 더 검색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났는데, 마콜라 빌라 판매글이라니.
나는 FACEBOOK계정은 있지만 가끔 들어가 보기만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게시물을 올린 것이 8년 전 일 거다. 12년 전에 트위터도 했었지만 지금은 내 계정이 뭔지 기억나지 않는다. sns도 안 하고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무서운 세상이다. 전자세상은 나의 아주 사소한 검색 기록을 미끼로 삼아 나를 유혹하다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자세상이 지금 내가 마콜라에서 살 이유가 없고, 빌라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 빌라를 살 돈이 없다는 것은 모르는 것 같다는 점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나에 대한 파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별로 무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파편들이 모여서 잔뜩 왜곡된 내가 만들어지는 것은 무섭다. 나는 마콜라 빌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는 그 글을 클릭했다. 뭐야 이거. 나조차 나의 왜곡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하는 수없는 클릭들이 전자 세계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정도는 알고 살고 싶다.
그런데 힘들겠지.
문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