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광고 문구는 한국인 만화가가 일본의 3대 만화 출판사 중에 하나인 고단샤(株式会社講談社)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더불어 SNS에서 화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작가의 비공개 단편인 〈시간 죽이기〉도 수록되었다고 하니 호기심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의 회사에서 출간된 책이니 조금은 과장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어떤 만화길래, 이렇게까지 홍보하는지 신기했다. 특정한 상(賞)이 작품의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의 어느 한 만화가가 일본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니 관심이 쏠리게 되었고, 이런 만화가의 이력과 관련이 있는 작품이 너무나도 궁금해 아침 일찍 서점으로 향했다. 대형 서점을 가기 위해서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지만 텍스트의 진면목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 작품은 바로 지난달 말에 출간된 강착원반이 글을 쓰고 사토가 그림을 그린 〈데드미트 패러독스 Deadmeat paradox〉(다산북스, 2023)이다. 의역을 하자면 죽은 존재의 항변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작품을 모두 정독하고 뭔가 아쉬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 작품을 이렇게까지 홍보할 필요가 있었냐는 생각도 들었다. 강착원반과 사토의 만화가 덜 좋다기보다는 출판사가 지나치게 광고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윤을 남겨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만화책인 것처럼 광고하는 것이, 뭔가 만화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감이 있으면 오히려 자신을 화려하게 전시하지 않는데 그 반대였으니 조금은 그랬다.
그래서 출판사의 경우 이런 방식보다는 소신 있게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만화가를 홍보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출판사라면 오히려 믿음이 갈 것 같았다. 국외에서 수상한 작품에 귀를 열기보다는 아직 무명이거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찾는 것이 오히려 만화계에도 희망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아쉬움으로 인해 어제는 책값 일만 삼천 원을 지불하고 허탈한 마음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편견과 혐오를 넘어
하지만 이것은 한 명의 독자인 내가 품은 출판사에 대한 아쉬움과 작품에 대한 견해이지, 〈데드미트 패러독스〉에 대한 전적인 실망은 아니다. 이 만화는 인간이 사는 세계에 ‘좀비’도 함께 살아간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좀비를 다루는 작품 대부분이 좀비를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거나, 악으로 간주해 전부 몰살시켜 버리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면, 이 작품은 좀비를 ‘병’으로 간주하는 시선과 이 병을 치료(공존)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한 인간이 “사망 후 최대 30일 이내에 부활하게 되는 원인 불명의 병 또는 그 병의 환자를 ‘좀비’라고 칭한다.”(10) 이것은 이 만화를 지탱해주는 올랜드 제국의 세계관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죽고 난 후, 부활한 좀비(인간)는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외모나 장기가 썩어 악취가 나더라도 좀비들은 인간과 함께 삶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물론,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도 좀비들은 상처 입으면 죽고, 방부제를 제때 바르지 않으면 썩어 죽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삶 자체가 올랜드 제국의 세계관에서 평등하냐는 것이다. 죽었지만 다시 살아난 냄새나는 인간(좀비)이 함께 동등한 처지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내 아내가 좀비인 것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178)을 주민들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지만, 이 마음을 숨겨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올랜드 제국이기도 한 것이다.
만화가는 이 지점에 대해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SF 형식으로 구성된 좀비물이라는 장르의 성격을 활용해 상징적인 기표, 즉, 인간의 계급의식과 혐오 감정에 대해 다룬다. 그러니 독자들은 학력, 등단지, 나이, 성별, 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등으로 계급을 구분해 혐오 감정을 발설하는 부끄러운 역사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접할 수 있다. 만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우리’와는 다른 ‘존재’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좀비의 형식으로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강착원반과 사토가 어떤 장치를 가지고 ‘혐오’와 ‘편견’의 문제를 이야기하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이 두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데드미트 패러독스〉의 이런 장점과는 무관하게 뭔가 아쉬움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작가가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짐작하겠지만, 뭔가 이런 이야기가 너무나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일 수도 있지만 이런 패턴의 SF 이야기는 동시대에 이미 너무나 흔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나의 이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SF라는 장르의 힘을 빌려와 부모님의 보험금 수령 문제를 등에 업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드미트 패러독스〉의 장점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올랜드 “제국 최고 보험사 빅베일”(151)과 “몰락 귀족인 아르테미아 가문”(150)과의 재판 과정은 무엇인가 동의하기에는 조금은 어려움 지점이 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쉬움
그렇다면 〈데드미트 패러독스〉에서 ‘재판’ 과정은 왜 중요한가. 이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올랜드 제국의 세계관에서 ‘좀비’는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말은 인간과 함께 살고 있지만, 인간과 동일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어떤 방식이든지 좀비는 인간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들은 삶의 과정에서 억울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여러 불이익 앞에 당당하지 못하다.
만화가는 이런 세계관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끌어들인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그 세계가 품고 있는 구조적인 제도인 ‘법’을 통해 피해 보거나 억울하게 누명 쓴 사람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 ‘골드’에게는 억울한 사정이 있는 좀비들이 찾아와 자신의 사연을 해결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변호사 골드 또한 좀비를 가족으로 두었기 때문에, 이들의 억울한 사정이 남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변호사 골드가 이 제안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좀비를 외면하는 올랜드 제국의 세계관 자체다. 이 제국의 ‘세계관’은 ‘법’ 자체이기도 하니 변호사 골드는 좀비의 억울한 누명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변호하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 “제국은 공식적으로 좀비에 대한 ‘어떤 판결’도 내린 적”(63) 없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좀비는 법 테두리 안도 밖도 아닌 저 멀리 초라하게 놓여있다. 그래서 변호사 골드는 억울한 사연이 있는 좀비를 돕기 위해 제국의 법을 재판에서 역이용한다.
아쉬운 것은 이런 참신함이 생각보다 밋밋하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몰락 귀족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인 ‘릴리’의 변호 과정이 무엇인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릴리의 부모님은 죽기 전에 “미성년자인 상속자에게는 상속대리인이 붙어 재산을”(33) 빼앗아 간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현명한 선택을 한다. 그것은 사망보험금 형태로 상속 전까지 보험사에 재산을 담보한 것이다. 하지만 보험사는 막대한 재산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려 릴리를 죽인다. 그런데 릴리는 인간으로서 죽지 않고 좀비로 다시 태어난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릴리는 억울함을 풀어내기 위해 변호사 ‘골드’를 찾아간다.
이때 골드는 여러 상념에 빠진다. 좀비의 억울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랜드 제국의 법 제도로는 좀비를 변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드는 ‘법’은 이용한다. 몰락 귀족인 아르테미아 가문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제국에서 가장 힘 있는 보험사 빅베일 측이 자신의 입장에 반기를 들어 변호할 수밖에 없도록 전략을 세운다.
즉, 골드 측은 사망보험금 수령 목적으로 ‘릴리’가 죽었다는 주장을 끌어오게 되고, 빅베일 측은 골드 측의 반대 의견인 ‘릴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주장하게 된다. 골드는 처음부터 이 재판에서 이길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빅베일 측을 자극하면서 보다 잘 지려고 노력한다. 운좋게 빅베일 측은 골드의 꼬임에 넘어가게 되고 ‘릴리’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제국의 ‘법’ 제도를 통해 증명하게 된다. 이 과정이 중요한 것은 가장 권위 있는 집단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좀비’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호사 골드와 그를 도왔던 많은 인물들은 재판에서 졌지만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제국에서 가장 힘 있는 ‘빅베일’ 측이 너무나 손쉽게 재판에서 진다는 점이다. 작가는 나름 극적인 연출을 의도했겠지만, 이 과정이 무엇인가 너무나 싱겁게 진행되었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빅베일 측이 변호사 골드가 생각한 지점을 상식적으로 모르지 않을 것 같은데, 너무나도 어리석게 묘사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악당을 향한 풍자와 비판을 노골적으로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너무나도 편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놔둔 것은 아닌가,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니 고단샤(株式会社講談社) 공모전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 의심이 간다. 나아가 우리는 무슨 이유로 상을 쫓는 것일까. 이 질문이 머리에 맴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제외하고는 그림체라든지 저자가 품고 있는 내용이 쓸모없지 않기에 친구들과 돌려보기에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