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거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함께 모여 음식(사실 야식에 가깝다)도 먹고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고 tv도 보면서 얼굴을 마주하며 보내는 장소가 거실이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가족 모두가 앉을 수 있는 6인용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 뒤로는 병풍을 펼쳐놓은 듯
키 큰 책장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주 냉장고 정리를 하고 나니 이번엔 책장의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저학년 때 읽는 건데 아직 꽂혀있네.’
올해 5학년이 되는 둘째 아이가 저학년 때부터 읽던 책이었다. 요즘 냉장고 정리 이후로 눈에 보이는 것마다 정리해야 하는 욕구가 먼저 생긴다. 책장 정리는 냉장고 정리보다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크면 이사센터에서도 책이 많으면 추가 요금이 있다고 하겠는가?) 책장에 꽂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고 둘째 아이가 읽은 지 한참 지난책은 빼기로 한다.
냉장고 정리할 때는 반찬통을 하나씩 빼면 되는데 책장의 책은 기본 열 권씩은 빼야 정리 시간을 단축시킬 수가 있다.
두 손안에 들어오는 만큼 책장에서 책을 빼고 같은 종류의 책끼리 바닥에 쌓으니 푸른 냇가에 있는 징검다리가 우리 집 거실에도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한 질, 두 질, 세 질,... 여섯 질을 빼고 시리즈 책과 단 권 책들도 빼서 깨끗하게 닦아본다. 다 닦은 책은 노끈으로 묶어 동생네와 시누네 아이들에게 나눔을 해주기로 한다.
유치가 빠져 이갈이 하듯 비어있는 책장엔 둘째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을 큰 아이 방 책장에서 빼와 한 칸 한 칸 채워나간다. 튼튼한 영구치가 나듯 책장에 아이가 2년 동안 읽을 책을 꽂으니 다시 책장엔 우리 집 거실을 돋보이게 해주는 알록달록한 병풍 그림이 펼쳐졌다.
아이와 함께 책의 위치를 정하고 영역별 책을 차례차례 꽂아본다. 제일 좋아하는 책은 아이의 손이 잘 닿는
가운데 위치에 놓고 좀 더 챙겨봐야 하는 책은 좋아하는 책 위아래에 꽂아두기로 했다. 새롭게 제자리를 다 찾은 책들을 잘 기억하기 위해 아이와 책 분류표를 포스트잍에 써서 붙여보기로 했다.
“지운이는 과학 하면 어떤 게 생각나?”
“과학 하면 에디슨이죠! 그리고 과학은 재밌어요.”
“오~그럼 과학책 분류표에 뭐라고 쓰면 좋을까?”
“재미있는 과학책. 어때요?”
“좋다! 그럼 포스트잍에 써서 책장에 붙여보자.”
책장에는 총 6장의 책 분류표가 붙여져 있다. 재미있는 과학책, 꼭 알아야 될 역사책, 매콤하고 짭짤한 세계사책, 모든 맛이 다 있는 지식책, 또 읽고 싶어지는 문학책, 영어 쑥쑥 영어책. 6장의 포스트잍에 책 분류표를 적으며 아이는 책에 대한 느낌과 감정을 네임펜으로 꾹꾹 눌러 담아본다. 이렇게 아이랑 이야기를 나누니 아이의 취향도 책에 대한 느낌도 알아가게 된다.
도서관에 십진분류표가 있다면 새로 정리한 우리 집 책장엔책에 대한 아이의 감정느낌 분류표가 책 영역을 분류하고 있다. 아이만의 분류표가 우리 집 책을 잘 소개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