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생 - 이 생

15. 어느 날

by 김정욱

그늘 좋은 야외 벤치에 앉았다.



"인사해 - - 아버지야"


매가 순한, 웃음이 많은 아가씨다.

한마디 하며 호호. 또 한마디 하며 호호. 뛰어가는 오리도 우습고, 앉아서 하품하는 개도 우스운지 연신 손을 가리며 웃어댄다.


"어머. 아버님 - - 생각보다 정정하시네요! 호호 - "


'나를 바싹 꼬부라져 골골대는 늙은이로 생각했단 말인가 뭔가?'


어쨌건, 말 수 적은 아들놈 좋다하는 아가씨라니 - - 무조건 이뻤다.

아무렴, 아무렴. 이런 딸내미가 내게 있었다면 내 인생도 이리 삭막하지 않았을 것을 - -

가을쯤 결혼 할 거란다. 좋은 일이다. 기쁜 일이다. 이런 날이 내게도 오다니 - - 나는 주책 맞게 자꾸 눈물이 났다.


"아버님. 저희 결혼하면 시설에서 나오세요. 같이 살지는 않더라도 가까이 살면서 왔다 갔다 하면 될 거 같은데 - - "


아들 녀석이 말없이 아가씨를 잡아 끈다.

아직 저희끼리 의논되지 않은 얘기인가 - - 그냥 아가씨 생각이거니 하면서도 고마웠다.

아무려면 어떠랴. 아들놈만 잘 살아 준다면 내가 어디에 있건 무슨 대수랴.


아가씨 이름이 황 보라. 29살.

부모를 일찍 여의고 오빠 하나 있단다. 자신은 부모님이 안계시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면 어떠냐고 말하면서 또 웃었다. 그늘이 없고 밝은 아가씨다. 아들 녀석의 복이다. 나는 보라양의 손을 잡았다.


"이 놈 잘 부탁한다. 알고 보면 속정 있는 놈이란다 - - "

"알아요. 아버님, 호호호 - - "


컴컴하게 어두운 구름 위에도 밝은 태양이 빛나고 있다 했던가?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두워진 내 하늘도 그 위로는 밝은 태양이 있으려니 - - 가끔은 한번씩 그 얼굴을 보여주려나?


그럼 내 인생은 - - 나쁘지만은 않은건가?

나는 오랜만에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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