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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hayoung Feb 19. 2024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연애를 하는 솔직한 이유

'사랑'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설레기도, 아프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무감각하기도 할 것이다. 유치하다는 느낌도 들고 고결하고 숭고한 느낌도 들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사랑이 하기 싫어진 사람도 있지만, 사랑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현상만 보면 사랑은 감정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사랑을 우리는 도대체 왜 인생의 큰 축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어떤 메리트가 있는 것일까? 인류가 결혼을 하는 이유, 결혼의 장점 같은 이야길 하려는 게 아니다. 사랑이(여기서 사랑은 연인 간의 사랑을 말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떤 것을 주는지를 생각해 보려 한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주체라는 전제가 일단 필요하다.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좋은 것, 1순위에 둘 수 있는 것은, 그 사람만이 지닌 섹시함을 나 혼자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가지만 고르라면, 이것이 내가 사랑을 하는 이유이다. 넘치는 매력을 주변에 이성이 알든, 구경을 하든, 탐을 내든 할 수 있지만, 일단 그것을 맛보고 즐기고 누리는 것은 오직 서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니까. 그래서 이별은 더 이상 그 섹시함을 나 혼자 소유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을 때, 아니 나는 전혀 필요 없어서 남이 가지는 게 좋겠다 싶을 때 하는 거다. 나는 이런 생각이 숭고하지도 않지만 유치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건강할 수 없지 않은가. 상대의 섹시함을 나 혼자 누릴 수 있는 영광(?)에 대해 감사해하며, 가치 있게 여기고, 이런 마음을 아름답게 가꿔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그러는 나 역시 섹시해진다는 건 사랑이 지닌 위대한 파급효과이다. 이 모든 게 사랑을 통해서만이 완벽하게 이뤄진다는 점이 사람들이 사랑을 못 끊는 이유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개가 똥을 끊지 인간이 사랑을 끊나?


서로의 섹시함을 지켜주고 누리는 과정에서 가정이 생길 수도 있고, 자식이 생길 수도 있고, 안정감과 평안함이 생길 수도 있다. 사랑의 '부수적'인 효과다. 그런데 꼭 사랑이 있어야만 이런 부수적 효과에 대한 것들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싶어서 이성을 만날 수도 있고, 어떤 인정을 받고 싶어서 가정을 꾸리기도 하겠지만, 나는 상대방을 섹시하다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런 것들이 이뤄진다면 좀 더 어려운 길을 가는 거라고 생각된다. 생물학적으로 어떤 본성이 있다, 없다를 말할 순 없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섹시하고 싶고, 섹시함을 소유하길 원한다. 그것을 원하는 강도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내 아이를 정말 잘 키울 것 같은 사람 자체에게 강력한 섹시함을 느끼는 이라면 부수적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모든 예시를 다 거론할 수 없으니 양해를 구한다)


지금까지 말하는 섹시함이 외적인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 것이다. 성격, 성품, 가치관과 몸짓, 행동, 말투, 외모 같은 외적인 것을 포함시켜 그 사람만이 가진 모든 것을 아우른 것, 이러한 것이 그 사람을 더욱 사랑스럽게(여성스럽거나 혹은 남성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매력 자체를 뜻한다. 단순히 '매력'이라는 단어는 본질적인 부분을 담지 못하기에 달리 이것을 섹시함이 아닌 단어로 표현할 수가 없다. 연애를 하면 행복하다는 예시를 살펴보자. 연애를 하면 내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지출도 늘며, 어느 정도 자유가 제약된다. 이외에도 부정적인 부분을 열 가지는 댈 수 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이 모든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아주 흔쾌히 부정적 측면을 감수하며 연애를 시작하고, 심지어 행복에 겨워한다. 포기하게 되는 것들보다 얻게 되는 사랑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왜 설명하고 있느냐면, 사람이 얼마나 섹시함을 원하는지를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는 것은 반드시 뒤따르는 게 바로 세상의 이치이다. 그러니 동시에 두 사람을 원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꿋꿋이 섹시하길 바라면서 그릇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무책임하다, 이기적이다, 악질이다 등의 질타를 받는 것이다. 또한 그런 이기적인 사람을 끊어내지 못하고 여전히 섹시하다 착각하며 그것을 갈구하는 사람을 어리석다 비판하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안타까운 사람일 수 있지만, 일단 두 사람이 시작한 관계의 책임은 두 사람에게 가장 비중이 크니까.) 그래서 사랑을 하면서도 늘 자신의 기준과 안목을 조금씩은 경계해야 한다. 누구든 건강한 섹시함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다가 가끔 지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잠깐 심호흡을 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상대에게 느끼는 섹시함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왜곡되어 있는 것인지. 정신을 좀먹게 하는 사랑은 그것이 일정 부분 행복이라 할지라도 결국 단단한 삶의 축은 되지 못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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