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로써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
이 회사는 어언 4년 차, 내가 에이전시에서 일할 당시 이직 제안을 받아 흔쾌히 입사하게 된 순간부터 1~2달 내로 신입 디자이너들이 몇 명 추가로 들어왔다. 아마 신사업 개발에 따른 벌크업 단계에서 디자인 부서가 확장되는 시기와 맞물렸을 것이다.
나랑 같은 날에 들어온 영상편집 직무의 디자이너와 그래픽디자인 2명. 그렇게 총 3명의 동갑내기 팀원들이 나와 비슷한 시기에 지금의 회사에 몸 담게 되었고, 그렇게 4년을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이번에 퇴사하는 친구의 처음 입사했을 때를 기억한다. '그게 근데, 왜 그래야 하는데요? 정해져 있나요?'라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던 모습. 자기가 만든 결과물에 대한 강한 자신감. 나도 디자인을 처음 했을 때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아 어렴풋이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는 걸 참느라 애썼다. (나이차이는 얼마 안남..)
나는 다른 신입 팀원들과 다르게 경력직 에이전시 출신에다가 당시 상무의 이직제안으로 인해 들어왔던 터라 직원들의 시선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당시 상무님이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로써 기존 직원들에게 썩 좋은 이미지로 다가가고 있진 않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어느 순간 나는 '상무님이 앉혀놓은 감시자(?) 겸, 오른팔'이 되어 한 동안은 디자이너들끼리 함께한 시간이 많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지만 나는 사내 정치질에는 관심과 시간도 없었거니와, 내 일 하는데 바쁜 스타일이라 주변을 둘러볼 여력도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는 동료 디자이너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일했다. 내 커리어로 디자인계에서 이름 한 줄 남기고, 요즘 유행하는 '흑백요리사'처럼 디자이너로써 네임드가 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시간을 졸여가며 커리어 엑기스를 만들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팀원들보다 조금 더 까다롭고, 조금 더 깐깐한 업무 방식으로 일했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 나는 그냥 일만 하는 사람이고, 남들보다 좀 깐깐해서 귀찮은 사람 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가끔은 과도하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건드려서 감정적인 갈등도 있었으리라. 짧은 시간에 성과들을 인정받아 승진도 빠르고, 3년 동안 열심히 달려온 지금은 리더급으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니,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직업적 성취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같이 달려주기만을 강요했었다.
나도 부족한 경력으로 한참 성장해야 하는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끊임없이 위를 쳐다보고 올라가려고 애썼다. 회사에서는 나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지만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팀원들의 업무와 일정을 관리하고, 내 페이스에 따라오지 못하는 팀원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왕왕 생기곤 했다. 나는 업무에 최대한 감정을 담지 않으려 애썼고, 그 말인 즉 동료와 사적인 대화나 관계형성에 대한 단절을 의미했다. 내가 팀원들과 친해지면 해야 할 말을 못 하게 되거나,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나한테 왜 저렇게 얘기하지?'라고 생각하는 감정적인 갈등으로 변하게 될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나는 팀원들에게 '일을 많이 하는 사람, 깐깐하고, 귀찮은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나의 선천적인 외향적 기질로 인해 아주 왕따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사실 그런 이미지를 고수하는 것은 굉장히 심적으로 고되고 외롭다. 팀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나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놀고 싶지만 남들보다 1시간, 30분씩 늦게 참여하던 때면,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곤 했다. 그렇게 혼자 외롭게 일하고 있다고 느낄 때쯤, 팀원의 퇴사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4년 동안 일해오면서 그동안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평생직장은 없으니 언젠가는 서로 뿔뿔이 흩어지리라 생각했지만 내 예상보다 그 순간은 조금 더 이르다고 생각했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팀원들에 대한 인간적인 이야기도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다는 점은 내게 큰 혼란을 주었다.
처음 입사할 때 강한 자신감과 의기양양하게 의견을 표출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퇴사하는 크루는 본인의 업무 역량이나 기질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보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임원진과의 연봉협상 때도 비슷한 지적을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결국 내 앞가림을 위해 팀원을 이끌어주지 못하고, 끊임없이 압박하는 리더였던 것이다. 팀원이 어떤 업무를 원하고 어떤 것에 특화되어 있는지 세심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한 관찰은 결국 인간적인 유대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모른 채, 로봇 같은 사회생활을 했다. 내가 조금 더 속도를 늦추고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경력이 쌓여가고, 갈수록 회사에서 요직을 맡게 될수록 팀원들과의 거리는 멀어질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안 주변에 아무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는 시기이다. 성과도 챙기면서, 팀원들과의 유대관계도 끈끈히 다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른 회사의 팀장들은 이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도대체 어떤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이번을 계기로 나는 성과에 대한 압박을 조금 내려놓고 팀원들과의 관계에 조금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너무 사무적인 태도가 아닌 인간적인 태도로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회사의 일이 잘 풀릴지.. 아니면 정말 업무의 질이 떨어질지,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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