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래 Nov 05. 2021

한국어 학급도 아는 오징어 게임

한국어 학급의 일상

  여느 수업 시간처럼 1학년 아이들과 맞춤법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책을 보며 ‘엇?’ 하며 반가운 티를 낸다. 아이들이 책을 반가워할 일이 없다. 그래도 혹시 귀여운 그림이라도 나왔나? 하고 들여다보는데, 한 아이가 ‘오징어 게임!’이란다. 받침 ‘ㄱ’이 들어간 단어는 ○, 받침 ‘ㄴ’이 들어간 단어는 △, 받침 ‘ㅂ’이 들어간 단어는 □으로 표시하라는 보기인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무늬와 비슷했나 보다. 한 아이가 외치니 다들 눈을 반짝이며 한마디 거들고 싶어 한다. 한두 명만이 본 것이 아닌 듯하다. 물어보니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아이가 알고 있었다. 어떻게 봤냐고 하니 부모님과 같이 본 아이도 있었고, 유튜브를 통해 본 아이도 있었다. 물론 나도 오징어 게임을 봤다. 하지만 너무나 불편한 마음으로 봤던 나로서 1학년 아이들이 모두 안다고 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의 말과 생활, 놀이를 전 세계인이 관심을 갖고 알아보는 것이 신기하면서 놀랍다. 이러한 관심이 드라마라는 문화 콘텐츠로 덕분이라는 것이 문화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한 번 더 느낀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했던 많은 한국 문화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징어 게임에 나왔던 모든 것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어른의 문화다. 아이들이 즐길 문화가 아닌데 아이들이 안다고 하니 불편하다.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교사로서의 책임감으로 걱정도 크다. ‘오징어 게임’에 아이들이 더 이상 관심 갖지 않았으면 한다. 


무그나....
무구나꼬츠 삐어.....
무고나꾸치 삐애쓰니다     

  교실 뒷공간에서 알 듯 모를듯한 소리가 들린다. 쉬는 시간 아이들에게 꿀 같은 자유시간을 주고, 나는 급히 처리해야 할 공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마음대로 손가락이 안 움직여 자꾸 모니터에 엉뚱한 글자가 써져 끙끙대며 씨름하고 있는데, 주문 같은 소리가 들린다. 익숙하지만 언뜻 떠오르지 않는, 들리는데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다.     


  주문을 듣고 코브라 머리를 내밀듯 내 머리를 모니터 위로, 쏙 올렸다. 주문 읊고 있는 주인공은 한창 코로나 시국이었던 2020년 중순부터 한국어 학급에서 공부하기 시작해서 어언 1년 반에 접어든 고참 2학년 아이다. 경력만 고참이지 한국어 실력은 경력에 한참 못 미친다. 이제 겨우 단어 읽기와 간단한 낱말 받아쓰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의사 표현을 아직 ‘아니’ ‘응’ ‘화장실’ ‘그거 돼, 안돼’ 정로도 해결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주문을 왼다.


‘분명 한국언데…. 쟤가 한국어를 길게 하네…. 뭐지?’


  귀로만 들었을 땐 몰랐는데 눈으로 그 아이를 보니 뭔지 대번에 알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다. 이미 1학년 아이들을 통해 알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작은 지구인 우리 반에도 '오징어 게임'이 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아이들과 수업시간에 예전부터 많이 했던 놀이다. 특히 볕이 좋고 바람이 좋은 봄날과 가을날에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아닌 자연에서 노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했었다. 다만 그때 아이들은 나들이 삼아 한번 하고 다시는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쉬는 시간에 먼저 하는 놀이가 되었다. 더욱이 한국 아이들이 아닌 다문화 아이들인데도 말이다. 


  우리 반에서 다문화 아이들이 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가 예전의 놀이와 다른 점이 있다. 움직여 술래에게 걸렸을 때의 모습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움직이면 총에 맞아 죽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술래에게 걸리면 ‘으억’ 하며 총에 맞아 죽는시늉을 한다. 그리고 그 놀이에서 배제된다. 오징어 게임에서 본 장면이 전부이기 때문에 '오징어 게임'을 따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벌칙이 그러한가? 전혀 아니다. 그렇게 냉혈한 놀이가 아니다. 걸리더라도 비록 잠시 술래 옆에 가서 새끼손가락 걸고 잡혀있지만 기회가 더 있다. 깐부가 있기 때문이다. 술래와 나 사이 약한 수갑을 끊으러 오는 깐부가 있다. 드라마처럼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거나 놀이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것까진 알지 못했다. 절반만 놀이를 알고 있어 안타까웠다. 


  이렇게 된 거 개인적으로 너무 불편한 콘텐츠지만 ‘오징어 게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 ‘한국어 학급 꼴뚜기 게임’이라도 해서 반만 알고 있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제대로 알려주고, 달다구리 달고나도 함께 만들어 봐야겠다. 그러면 적어도 온전히 놀이나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으니깐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