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린 Apr 06. 2021

매력을 대하는 불편함

소라게와 칠게

넓은 갯벌 노을질 무렵에 이르

소라게와 칠게는 서로의 차이에 호감을 느꼈다.

며칠 동안 둘은 거의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었다.

둘은 서로의 기분을 기쁘게도 나쁘게도 할 만한 거리까지 가까워지게 되었다.


모든 신체와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칠게와 달리

소라게는 대부분의 본체를 소라 껍데기에 숨기고 있었다.

칠게는 베일에 싸인 소라게의 신비스러운 모습에 푹 빠져들었다.


소라게는 평소에 껍데기 속에 들어가 있었다.

종일 소라게와 놀고 싶었던 칠게는 애가 달았다.  

칠게는 자신도 그 껍데기 속에 함께 지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다음날 둘은 다시 만나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라게는 칠게가 가끔 자신의 껍데기 속을 들여다보기를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라게에게 껍데기 속은 유일한 자유의 공간이었다.

은폐를 원할 때는 가면이 되어 주고, 도망치고 싶을 때는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

그것은 자신을 지켜주는 전부였다.  

칠게와의 대화에서 점점 불편함을 느꼈다.

소라게는 대화 도중에도 아무 말 없이 껍데기 속으로 숨어 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칠게는 소라게가 피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갑갑했다.

칠게는 이 모든 사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에 사로 잡혔다.

칠게는 소라게의 집 앞에서 몇 시간씩을 기다렸다.

그런 행동은 곧 소라게의 감동을 이끌어 낼 것이라 생각했다.  


소라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아무리 안락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좁아터진 공간에서 반나절을 지낼 수는 없었다.

자유를 타인에게 빼앗기고 있다니!

그동안 칠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했던

자신의 부처와 같은 배려에 한계를 느꼈다.

그동안 참아줬더니! 감히 너 따위가!

그래서 당장 칠게와 단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제가 힘들게 감춰 놓은 것 까지 짓궂게 찾아내려고 하시죠?

궁금하시면 혼자만 생각하시고 제 앞에서 뱉지 마세요.

남들은 그냥 혼자 생각하고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일일이 다 확인하려 하시니

당신 주위 사람들은 참 너그러워야 할 것 같네요!


칠게는 상처 받았다.

어제까지 가장 가깝다 생각했던 상대가 오늘은 자신을 세상 누구보다 혐오하고 있다.

칠게는 더 이상 소라게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서 칠게는 자신이 좀 더 성숙해지면

또다시 예전의 관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칠게가 생각하는 성숙은 주로 '이랬었더라면... 저랬었더라면...' 하는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한 후회들로부터의 반성뿐이었다.

결국 칠게는 몇 년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칠게는 조금은 성숙해졌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그 대가는 크지 않았다.

칠게는 자유로운 몸을 가졌음에도 스스로 자신을 속박하며 자유를 얻지 못하였다.


소라게는 여전히 무거운 껍데기를 지고 살고 있다.

기쁨을 쫓다가도 그 대상이 슬픔으로 바뀔 때는 당장 숨어 버리고 도망쳤다.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소라게의 사랑들은 내주지 않으려는 적당한 감정으로 시작하고 끝났다. 

대상에 대한 이해는 쌓이지 않았고 그 끝은 공허했다.

소라 껍데기의 크기는 예전보다 조금 커졌지만 그것을 벗을 수는 없었다.

소라게의 자유는 여전히 껍데기 속 거기까지 였다.


그 바닷가에서 자유를 가진 존재는 그저 바람, 파도, 돌 따위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격정 속에서 선택한 둔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