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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너 Feb 21. 2024

미시세계탐험_<추락의 해부>

<Anatomie d'une chute>(2023, 쥐스틴 트리에)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락의 해부>의 초반부를 보면서 작품이 확실히 스릴러 플롯의 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의 발생. 용의자에 대한 미스테리. 관객에게 범죄와 관련된 발견의 순간들을 순차적으로 제공하는 전개 방식. 경찰 수사의 진행과 지난한 법정 공방. 모두 영락없는 범죄 스릴러 영화의 성분들이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작품이 관습적인 스릴러 영화의 결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법정 공방이 시작된 이후의 시퀀스들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일 것이다. 



<추락의 해부>의 주인공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사건 당사자 신분이다. 그러나 작품이 무죄를 밝히기 위한 캐릭터의 투쟁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변호사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 흔한 경찰이나 기자가 주인공으로 활약하지도 않는다. 살해 혐의가 적용된 인물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행동 반경은 또한 대단히 좁게 설정되어 있고, 만나는 사람의 수도 정해져 있다. 주인공 캐릭터가 무죄를 밝히기 위한 욕망을 가진 인물로 설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포석을 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동력, 즉 연쇄 사건이나 새로운 발견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간쯤 가면 그런 의문이 든다. 관객이 주인공 산드라(잔드라 휠러)에게 동화되어야 하는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야기가 산드라의 무죄 증명을 위한 고군분투로 흘러가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변호사의 시간이나 수감의 고초를 겪는 인물을 조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객관적인 태도로 사태를 관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향으로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관객을 싣고 이리저리 흔들고자 하는 양상이 나타날 뿐이다. 이를 위해 작품의 중요한 토막들은 대부분 법정에서의 공방들로 채워지고 있다. 



<추락의 해부>는 결국 세부적인 대사 한 줄 한 줄과 법정에서 발생하는 검사 측 주장과 변호인들의 주장, 피고와 증인들의 말 한 마디와 그에 따라 변화하는 분위기,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의 지난함들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텍스트다. 작품의 테마는 곧 인간 사회 속에서 사건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한 담론 속으로 수렴한다. 스릴러 플롯으로 다가왔던 사건의 시작은 이 과정에서 유사 다이렉트 시네마를 방불케하는 미시적 순간들의 기나긴 향연으로 이어진다. 





작품을 보고 나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이 여기에 있다. 바로 미스테리를 관통하는 플롯의 어느 지점에서 상당히 길고(고전적인 시나리오 작법에서 통상적으로 생각되는 기준보다 훨씬 긴) 많은 양의 대사로 채워져 있는, 따라서 연대기적으로 흐르는 실시간을 경험한 것처럼 만드는 시퀀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 유스케(니시지마 히데토시)와 다카쓰키 고지(오카다 마사키)가 대화하는 자동차 씬을 보면서 들었던 느낌과 동종의 것처럼 다가오는 인상이다. 허울 좋은 표현인 것 같지만 결국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담론을 끌어오기 위해 미시세계로 천착하는 경향이 묻어난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추락의 해부>를 보면서 동시에 떠올랐던 작품이 로랑 캉테의 <더 클래스>와 <더 클래스>의 작가 였던 로뱅 캉피요가 감독한 <120BPM>이다. 공교롭게도 <더 클래스>는 <추락의 해부>처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120BPM>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두 작품 모두 극에서 플롯의 관습적 진행보다는 배경 속에서 진행되는 담론 자체나 인물들을 보여주는 대단히 긴 대사 시퀀스들이 중요하게 다뤄졌던 기억이 있다. 다만, 두 작품은 교육의 현실과 소수자 인권 문제를 다루는 차원에서 매우 선명한 사회계급적 담론을 테마로 끌어왔다는 점에서 <추락의 해부>와 다른 인상이 있다. 관찰영화들이 그 역사적 흐름에 맞게 무조건 정치적이거나 사회이슈적인 테마를 망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 또한 <더 클래스> 식의 접근을 다이렉트 시네마의 지류로 읽는 관객도 있고 아닌 관객도 있겠지만 - <추락의 해부>가 가진 여성이나 가족 혹은 창작-열등감, 장애와 같은 요소가 내포한 사회계급적 성질을 생각해 본다면 실제 재판 장면을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수많은 대사들로 채워진 법정 시퀀스들을 통해 드러내려는 '그 무엇'이 영화 전체의 테마나 미스테리 스릴러 드라마로서의 장르적 지향점과 다소 모호하게 붙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가끔 데이빗 핀처의 <조디악>이 얼마나 훌륭한 영화인가에 대해 떠올릴 때가 있다. 핀처는 <조디악>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시선과 그 속에 담긴 미시적 세계의 다양한 상황을 다루면서 관객들에게 객관적이고 성숙한 태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매력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핀처가 집중한 것은 양식(Style)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면서 테이크를 한 번 더 가는 행위가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조금 더 수월해진 경향이 있는게 사실인데, 핀처는 이를 이용해 실제로 무언가를 대단히 다양한 각도와 시점에서 조명하고 상황을 미시적으로 쪼개면서 피사체를 바라본다는 인식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물론 <조디악>의 성취도는 같은 동작을 90번씩 100번씩 반복하면서 오는 배우와 스탭들의 피로도와 반비례한 것으로, 프로덕션 차원에서 모종의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디악>의 경우 현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사건의 미스테리가 가중된다는 점이다. 어디에 어떤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춰야 할지 알기 어려운 상태로 관객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이쯤 되면 양식적 태도가 드라마-장르와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작품은 끝까지 그 진실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진실 찾기에 집착한 이들의 삶이 어떻게 피폐해졌는지, 사회는 그런 사건을 묻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누가 범인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결국 사건이 어떻게 매듭이 지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방점을 찍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조디악>에서 핀처가 시도한 미시세계탐험은 이처럼 영화적 성취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많은 발전적 담론거리를 남겼다고 본다.



영화의 어떤 흐름들이 이처럼 하나의 상황을 하나의 긴 시퀀스로, 긴 러닝타임과 많은 대사를 채워가며 진행된다고 할 때.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작고 핵심적인 순간을 미시적으로 탐험하기 시작할 때.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의 테마가 어디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는지를 찾아보게 된다. 또한 작품이 장르적 색채를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양식적 스타일이 플롯의 전개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탐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담론들이 보다 다채롭게 작동하고 있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영화 매체의 존속 가능성 또한 높아질 것으로 본다. <추락의 해부>나 <드라이브 마이 카> 같은 작품, 그리고 <더 클래스>나 <조디악> 같은 작품들은 그래서 소중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관련하여<추락의 해부>의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마지막으로 떠올랐던 작품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 업>이다. 영화 매체에 대한 탐구 혹은 그 가능성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업적에 대해 논할 때 <클로즈 업>에서 등장한 '법정 장면'은 어쩌면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법정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클로즈 업>을 보며 느낄 수 있었던 감동과 전율을 다시 가져다 줄 만한 영화를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P.S 잔드라 휠러의 연기도 아역인 밀로 마차도 그라너 Milo Machado-Graner의 연기도 훌륭하고 심지어 칸에서 상을 받은 개, '메시'의 연기도 뛰어나다. 그런데 또 하나 정말 대단한 호연을 보여준 배우는 검사 역할의 앙투안 라이나르츠 Antoine Reinartz가 아닐까 싶다. 상대적으로 언급이 적은 느낌이지만 법정 시퀀스의 밸런스의 한 축을 훌륭히 담당했다고 본다. 마치 <오펜하이머>에서 몹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제이슨 클락 Jason Clarke이 별로 회자가 되지 않아 의아한 것처럼 어느 한 곳에 앙투안 라이나르츠를 언급하는 글이 있다면 어떨까 싶어 굳이 사족을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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