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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PF 하이프 Mar 12. 2023

0.0001%의 가능성을 뚫지 못하면 처참히 버려진다.

축구선수가 축구를 그만두면 뭐 해 먹고살아야 돼?

가슴팍에 태극마크를 달려면 대략 0.0001%의 확률을 뚫어야 한다.

차범근, 안정환, 박지성, 한재하, 소병근, 김용환

모두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지만 앞에 세 명은 성공적인 축구선수 시절을 보내고 은퇴했고, 뒤에 세 명은 프로선수가 되기는커녕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 축구를 그만뒀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남자 선수는 총 26,310명이다. (21년 10월 기준, U-12~성인)

축구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K1 리그에 속하려면 2% 안에 들어가야 하고, 좀 더 넓게 잡아서 축구선수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K3까지 포함해도 2만 6000명 중에서도 5%에 불과하다.


모든 엘리트 선수들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 프로 선수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가혹하다.

 

U-12세 국가대표를 경험하고, 일본으로 축구 유학도 갔지만 결국 포기했다.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이유

10년 이상을 축구에 쏟아부었다. 0.0001%의 가능성을 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축구를 그만뒀을 때 내 세상은 한번 무너졌다.


 고등학생 때는 일본으로 나 홀로 축구 유학을 떠날 정도로 열정이 있었지만 실력에 한계를 느끼고 그만뒀다. 만약에 부상을 당하거나 하는 불가항력이 있었다면 미련이 많이 남았겠지만 완벽하게 스스로 그만하고 싶다고, 포기를 선언했다. 10년의 세월의 무색할 만큼 나의 축구인생은 한순간에 정리가 됐다. 더불어서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금세 깨달았다. 축구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다른 학생처럼 공부를 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낮았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세상으로부터 처참하게 버려진 패잔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까먹었다는 것이었다.
감독이 하라는 대로만 열심히 했다.
주어진 목표를 의심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사고방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했고, 자연스럽게 내 꿈은 항상 축구선수였다. 하지만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축구선수가 돼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이걸 하는 건가?', '그냥 뛸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들고 행복하다는 감정이 느껴져서 하는 건가?' 이런 시시콜콜한 질문이라도 스스로에게 던졌어야 했다. 맹목적으로 달리기만 했는데 목표가 사라지니 방황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축구를 그만둔 이후에 엇나가지 않도록 목표를 대신 세워준 멘토가 있었다. 바로 첫째 누나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나의 멘토 역할을 충실하게 해 주었다. 누나 덕분에 평생 운동만 한 사람이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 조차도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얻어낸 결과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세워준 목표였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다시 4-5년이 넘는 시간을 사회가, 다른 누군가가, 외부의 욕망이 세워준 목표만을 향해 달리며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사라진 울타리

누구나 살면서 자연스럽게 울타리에 갇히게 된다. 대체로 그 울타리는 사회가 만들어준다.


나에게는 울타리는 '축구 명문 초, 중, 고등학교 - 대학교 - 프로 선수'의 루트를 거쳐 멋진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높은 수능점수 - 인서울 대학교 - 대기업'이 그의 울타리일 수도 있다.


물론 울타리 안에서의 삶은 굉장히 안전하다.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 노력하다 보면 일정 이상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 울타리 안에서 얻어낸 것들에 대한 성취감도 확실히 존재한다. 더불어서 나의 경우처럼 '멋진 축구선수'라는 울타리가 사라져도 '대학 진학 - 대기업 '이라는 울타리를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나의 울타리를 대신 지어준다. 나는 다시 그 안에 들어가서 안전하고 맹목적으로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세상을 조금 둘러보니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대부분이 사회가 뚝딱뚝딱 만들어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울타리 없이 캠핑카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크기로 자신만의 울타리를 짓는 사람도 있었다.(물론 비유적으로)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며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지금 울타리에서 지내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이걸 하면서 먹고사는 게 대체로 행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기존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울타리를 지으면서 살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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