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가로 경험의 사적 대체재
장안의 화제, 여의도 현대백화점을 다녀왔는데 코로나 이후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것은 처음 본다. 코로나 종식된 듯.
지하철 여의나루 역에 내려서 몇 분 걸어가는데, 정말 여의도의 보행환경은 최악이다. 서울에서 직주근접이 가능한 얼마 안 되는 지역인데, 너무 도시 환경이 열악해서 전혀 매력이 없다.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간판은 아우성치고 아파트 단지 주변은 예외 없이 시멘트 담장에 볼 품 없는 조경, 자동차는 아무 데나 주차되어 있고.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피난민처럼 보였는데... 그런데 같은 사람들이 이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키도 커지고 자세도 발라지고 입고 있는 옷들도 그제야 멋이 나기 시작한다. 심지어 나이도 젊어지는?
몰링(malling), 특히 한국에서의 몰링은 결국 참담한 공적 가로환경의 사적 대체 경험이 아닌가. 대규모 상업자본의 체계적 강제력(?) 덕분에 조성되는,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실내 가로에서 잘 차려입고 걸으며 사진을 찍는 것이다. 정말 무언가를 사러 오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들은 아름다운 가로에 목이 말라있다. 물론 이 공간도 건물주가 백화점이니까 이 정도 컨트롤이 가능하지, 초기 투자비 회수한다고 저 가게들 분양했으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주인이 많아서 이해는 상충하고, 공공의 조절 능력이나 의지는 빈약한 진짜 가로에서는 더더구나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가게 가린다고 가로수 잘라달라 한다는...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이 그렇다. 심지어 청담동 명품 거리도 거리가 과연 명품인가. 극단적으로 말하면 공공이 일개 유통 기업만 못한 셈. 이러려고 세금 내고 그 난리 치며 선거한다고 생각하니... 아니다 지금은 그냥 건물을 즐기자.
건축은 내가 청년 시절부터 좋아하는 리처드 로져스답다. 색채나 형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규모 상업 공간을 기둥 없이 만들기 위해, 거기에 자연채광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당기고 매달고 정말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건물 여기저기에 보이는 케이블이나 쇳덩어리들, 미장센으로 달아놓은 키치나 장식이 아니고 실제로 열일하고 있는 진정성 충만한 구조다. (그렇...겠지?) 그거 보여주려고 여기저기 색도 칠한 거다. (그런데 그 회사에 색채전문가는 없는 것 같다.) 이왕 여기 가면 그런 것도 읽어보자. 국민소득이 이 정도 되니 그쯤은 해줘야 서로 사는 게 재미있지.
방송을 보면 ‘도심 속에서 숲을 제공했다’는 서사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건 글쎄... 그러기에는 인조목도 너무 많고 기본적으로 양적 질적 임팩트가 태부족인 듯. 실제로 한 걸 가지고 홍보를 하자.
식당이 붐비는 것에 비하면 매장은 상대적으로 덜 그렇다. 이 어마어마한 유동인구 중 산보객(urban flaneur)과 구매자의 비율은 시간이 말해주겠지만, 이왕 만들어진 공간이 장사도 잘 되어 두고두고 잘 사용되기를. 쿠팡은 인스타를 못 하잖아.
(* 이런 실내화된 가로의 역사는 꽤 길다 관심있는 분들은 발터 베냐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보시길. 다만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https://en.wikipedia.org/wiki/Arcades_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