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다 연진아' 박수는 못 치더라도..

동은이 같은 용기가 없어서 통쾌한 복수는 못하지만..

by 은소

학폭을 경험하면 평생 고통 속에서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는 걸까요?

얼마 전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더글로리'의 동은이처럼 최악의 학폭을 경험한 학생이라면 극심한 PTSD에 시달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상상만으로 소름 끼치게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육체적, 언어적 폭력의 강도가 심하지 않거나, 괴롭힘이 은근하고 교묘하거나, 학폭의 증거로 남기려면 어딘가 애매한 경우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이 당한 일이 학교폭력인지 아닌지 의식조차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특히나 물리적 증거가 없는 따돌림, 왕따, 괴롭힘 등은 학폭으로 인정받기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우리 학교는 제2 외국어 수업을 독일어와 일본어 중에 선택해서 들었습니다.

우리 학년에 독어반이 1개만 운영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일어반이었습니다.

게다가 이과반은 1개, 나머지는 문과반이 구성되어 의도치 않게 고등 3년 동안 이과반 친구들이 같은 반으로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유일하게 선택 수업이 있는 시간에만 해당 교실로 이동하여 반친구들과 분리되어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선택 수업 시간은 저에게 확보된 유일한 자유시간이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먹구름 같은 기억이 한 조각 남아있습니다.

우리 반에는 흔히 말하는 날라리도 여러 명 있었고, 일진 그룹에 속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날라리도, 일진도 무섭지 않았지만 오히려 단짝 친구 민이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교실에서 각자 또 함께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꽁냥꽁냥 우정을 다졌습니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모여 앉아 같이 도시락을 공유하는 절친 4인방은 저를 포함하여 선이, 영이, 민이..

등하교도 같이 하고, 학교에서도 항상 붙어 다니고, 화장실도 서로 같이 가주고, 매점도 혼자서 안 가고 꼭 같이 가던 왁자지껄 못난이 소녀들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어느 날 문득 저는 민이가 저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소유하려는 듯한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민이와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지거나 다투게 되면 민이는 보란 듯이 저를 제외한 많은 친구들과 소란스럽게 어울리며 의도적으로 저를 고립시키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혼자 우울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조용히 그 시간에 나에게 집중하고 여유를 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과시하는 민이의 목소리와 행동을 한걸음 떨어져서 관찰하는 시간이 오히려 휴식의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너의 그런 행동이 나를 힘들게 만들 수 없어.. 너는 너의 길을 가렴.. 나는 나의 길을 가볼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스스로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기 위한 방어적 심리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시절의 저에게 제법 성숙하고 대견한 소녀였다고 다독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저는 친구보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편하고 좋았고 친구에게 관심이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홀로서기를 연습하는 시간이 만족스럽고 즐거웠습니다.

친구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먼저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즐겁고 좋은 일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누군가 먼저 나서서 말하기 꺼려하는 문제들을 이야기하거나 건의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도 두려움이 없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미움받는 것에 대해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그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보니 고등학생 시절의 민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몽이는 저와는 아주 결이 다른, 섬세하고 예민하고 정이 많은 아이라서 몽이의 친구 관계 문제들에 대해 저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는 듯합니다.

저는 몽이와 반대로 좀 냉정하고 둔하고 무감각한 성향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참 이 육아라는 게 아이가 제법 성장했다는 생각이 드는 중등 3학년이 되어도 여전히 어렵고 복잡합니다.

계속 고민하고 이해하고 노력하는 엄마가 되어야겠죠..

몽이야 엄마에게 너의 마음 절반 정도만이라도 말해주는 솔직한 소년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너의 친구들 어느 누구보다 가장 엄마와 친한 사이라고 말해주는 너의 모습이 참 고맙고 사랑스럽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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