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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Apr 13. 2024

지금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뭐지?


물리적 아픔은 마음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물리적인 증상의 아픔이 나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 같다. 분명 나는 괜찮다고 느끼는 상황인데도 몸은 계속 아프다. 그럼 내 가설은 틀린 걸까, 내가 무뎌져서 인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찌 됐건, 몸이 아프면 계속 불편하고 나만 신경 쓰게 된다. 그래서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대하기도 하고, 이따금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엄마는 내 눈치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딱딱해진 분위기로 이야기가 끝날 때면 후회스럽고 미안해진다.


나도 정말 답답하다. 이럴 때면 계속 도돌이표인 이 아픔 속에서 절망이 스멀스멀 찾아온다. 물리적인 아픔이 찾아올 때마다 이번엔 도대체 뭐 때문인지, 뭐가 불편한지, 나의 문제점을 되묻기 바쁘다. 사실 이 아픔에서 얻어야 할 건 이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나쳐버린 내 마음을 읽기 위해 한 질문이었는데, 이젠 지겹고 불편한 질문이 되었다. 이젠 더 이상 내게 필요한 게 아닌 것 같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생각난 게 있다. 가고 싶은 학교가 생겼는데 성적을 더 높여야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목표가 높아지자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다. 그래서 핸드폰 사용을 줄이고자 잠금 앱을 설치했다. 하지만 억지로 막자 오히려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도움은 아주 조금 받은 것 같다.


사실 나를 진짜 멈추게 하는 것은 이런 잠금 앱이 아니라 지금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뭐지? 라는 물음이었다. 들어오는 시각적 정보들에서 눈을 잠깐 떼고 생각해 보는 거다. 지금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뭐지?


이 생각은 잠금 앱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잠금 앱이 나를 멈추게 해 줄 거라 생각하면서 행동의 선택권을 잠금 앱에게 주었다. 제대로 따르지도 않았지만.. 내가 주체가 아닌 멈춤은 오히려 더 큰 갈증을 만들었다. 생각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지, 내가 주체가 아닌 하루 속에는 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하루는 특히 시간이 빨리 간다. 무얼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흐른다.



내가 만족스러웠던 하루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공부를 하든 산책을 하든 유튜브를 보든, 내가 선택한다는 것. 지금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선택하는 하루.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까 라는 이유가 아닌, 내가 선택해서, 마음이 편해지기에 라는 이유로 행동했을 때, 하루가 만족스러웠다. 최근 며칠 동안은 생각 없이 흐르듯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생각이 많은 게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을 많이 생각하는지가 중요했다.


일기의 첫 문장에 꼭 적어야 할 것이 생겼다. 무얼 원하는지 생각하고 선택하며 살았는가.



아픔에만 집중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냥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것만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기에. 바꿀 수도 없는 것에 집중해 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뭘 잘못했지‘와 같이 과거의 내게 따져 물을 게 아니라, 오늘 하루는 무얼 가장 하고 싶은지, 무얼 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은지 생각해 보는 것. 지금 내게는 후자의 물음이 필요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럴수록 내가 원하는 방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최근에 화작이 내신 시험으로 칠 때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그냥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재미있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할 때 잠이 오는 건 대부분 재미가 없다는 신호이기에, 그 신호가 오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식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공부했다.


최근에는 어떻게 재미있게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게 만드는 공부를 할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편해지면 더 잘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해 버린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해야 하나.. 아무튼 어떻게든 나를 계속 못살게 굴어야 잘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불안을 덜 느끼려고 하는 발악 같기도 하다. 나를 불편한 상황에 두는 것으로 무언갈 열심히 하고 있음을 느끼고, 가짜 만족감을 갖는 것. 2년 동안 이렇게 해왔고 너무 힘들었으니까, 이번 한 번은 나를 믿어주면서 나다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봐야겠다. 내가 보내는 신호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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