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불시착하다

기러기 엄마의 n번째 비행일지

by 밤이 키운 아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기러기 아빠’를 가리켜 자녀교육을 위하여

배우자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로 정의하고 있다.

1990년대 조기유학 열풍에서 시작된 사회현상으로 원래 이름의 주인인 철새 기러기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해진 ‘기러기 아빠’들은 어딘가 짠하다.

그렇다면 ‘기러기 엄마’는 어떨까.

나는 ‘기러기 엄마’이다.


지난 2022년 12월 남편의 베트남 호찌민 주재원 발령으로 자의 반 타의 반 ‘기러기’가 된 후 6주에 한 번씩 비행을 하고 있다.

방송작가라는 업무적 특성상 방송이 끝난 후 몰아 쉬는 일주일 남짓한 긴 휴가를 이용해 둥지로 돌아간다.

마음 같아서는 눈 딱 감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 커리어와 비례하는 경제적 사정까지.

어느덧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문득 나의 첫 비행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나의 첫 비행은 그야말로 불시착에 가까웠다.

영어학원이라고는 문턱 한번 넘어본 게 전부인 아홉 살 아이를 국제학교에 입학시기는 것부터 친구 만들기까지.

집안일을 돌봐 줄 사람을 구하고 반찬가게를 탐색하는 것 등 모두 시간 내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그야말로 ‘미션임파서블’ 시리즈였다.


이 모든 걸 해내고 돌아온 ‘기러기 엄마’에게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은 '기러기 아빠‘들과는 조금 다르다.


“아이가 엄마 보고 싶어서 어떡해. 괜찮아요?”

“아빠가 아이를 잘 돌봐요? 훌륭한 분이네.”


짠하기보다는 모질고 일 욕심 많은 기러기이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사정을 설명하는 대신 나는 ‘우리 아이는 씩씩한 기러기 새끼’ 임을 자랑한다.


비록 우당탕탕 시행착오를 겪으며 불시착했지만 나의 비행일지를 통해

비슷한 선택을 앞둔 엄마들에게는 용기를,

베트남 호찌민 생활이 궁금한 이들에겐 정보와 쉬어가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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