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식 vs 동결이식
새벽 5시.
눈이 떠졌다. 다시 잠들어 보려고 몇 번을 뒤척였지만 점점 정신이 또렷해졌다. 시험관 과정을 겪을수록 불면(不眠)에 익숙해졌다. 뒤척임과의 씨름 끝에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하늘이 어두웠다. 잠시 망설이다 평소보다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복잡해지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정적이 내려앉은 복도에, 내 발소리가 작게 번져 나갔다.
접수번호 7번.
눈앞에 놓인 번호표를 한참 바라봤다. ‘행운의 숫자’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간 날 감싸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부적처럼 번호표를 손에 꼭 쥐었다. 잠시 뒤, 내 이름이 불려 진찰실로 들어갔다. 이후 내진을 하는 원장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밝았다.
"다행이에요. 자궁 상태가 좋네요. 신선 이식으로 합시다."
시험관 준비 카페에서 '신선이에요.', '동결인데요.'라고 쓰여있던 낯설었던 단어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신선 이식을 한다는 것은 당일에 이식을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흥분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설명에 집중했다.
"지난번 4개의 배아 중 3개의 배아가 수정에 성공했어요. 하나는 상태가 좋지 않고, 나머지 2개는 중상 등급이 나왔어요. 2개까지 이식할 수 있으니 오늘 두 개를 이식할 겁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시도를 할 수 있다니. 며칠간 애써 외면했던 불안들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설명을 통해 엄마의 자궁이 연구실의 배양액보다 더 안정적인 환경이기에 5일 배양까지 가기 전, 오늘 이식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까지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이후 분주히 채혈실, 상담실을 방문한 뒤 3층으로 향했다. 3층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간호사분은 환복 후 시술실로 바로 가도록 안내했다. 긴장이 됐는지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저 혹시 화장실 먼저 가도 될까요?"
"많이 급하세요? 이식은 되도록 방광에 소변이 차 있어야 좋아서요."
[이식(ET) 전 ‘방광을 채우면 좋은 이유]
1. 초음파 시야 확보 & 자궁 각도 교정
⦁ 배아이식은 보통 복부초음파 유도로 진행. 채워진 방광이 ‘음향 창’ 역할을 해 장(가스)을 밀어내고 자궁이 화면에 선명하게 보임
⦁ 방광이 적당히 차 있으면 자궁-경부 각도가 곧게 펴져 카테터가 부드럽게 들어감
2. 시술의 용이성·안전성 향상
⦁ 카테터 진입이 쉬워 시술 시간이 줄고, 경부 집게 사용을 줄일 수 있음 → 통증·자극 감소에 도움
⦁ 자궁 안쪽(저부)을 불필요하게 건드릴 가능성을 낮춰 자궁수축 유발 자극을 줄이는 데도 유리.
3. 현장 편의 팁
⦁ **‘적당히 가득’**이 원칙입니다. 너무 가득 차면 오히려 불편하고, 각도가 과하게 꺾일 수 있어 **부분 배뇨(살짝 비우기)**를 요청받을 수 있음
⦁ 준비 요령 예시: 이식 30–60분 전 물 300–500 mL 마시고, 요의를 살짝 느끼는 정도로 유지
⦁ 병원에 따라 질초음파 유도 이식을 하는 경우, 비우도록 안내할 수 있으니 담당 의료진 지침 우선
위 내용은 GPT의 설명이며, 개인차·병원 프로토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담당 의료진의 지침이 최우선입니다.
요의로 인해 더 긴장되는 상태로 시술대 위에 올랐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4일을 보냈던 내가 부끄러웠다. 세포도 며칠간 열심히 분열하고 있었는데, 나는 왜 온갖 부정의 생각을 끌어와서 시간을 보냈을까. 만약 이번에 임신한다면 나는 세포보다 더 철부지 엄마일 테지.
시술은 간단했다. 이식은 채취처럼 힘든 소독 과정도 없었고, 수면 마취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기분 나쁜 느낌의 불편감은 있었지만, 별다른 통증은 없었다. 이후 회복실 침대로 옮겨져 의료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똑똑- 아무님 맞으시죠?"
커튼을 열어젖힌 간호사분 손에 태블릿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화면을 넘겨 나에게 이식된 배아사진을 보여주셨다. 동글동글 분열 중인 배아 사진이었다. 순간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세포를 보고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이도록 작은 생명의 기운에도 어떤 애착 같은 게 느껴진 걸까. 그 순간만큼은 벌써 임신을 한 것 같았다.
이후 상담실과 약국에 들러 10일간 맞아야 할 주사와 약물들을 보냉백에 한가득 담아 집으로 향했다. 주사는 많았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쩌면 착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으니까. 남은 기간 밥도 잘 먹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지내야지.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10일간의 기다림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