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CG수치
아주 어렸을 적,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물 웅덩이에서 참방거리며 노는 것도 좋아했고, 비 온 뒤 하늘에서 무지개를 찾았을 땐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기뻤다. 그럴 때면 무지개가 땅에 닿아 있는 지점을 찾아본 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참을 달려가곤 했다. 아무리 달려가며 손을 뻗어도 무지개는 점점 멀어졌지만.
무지개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즈음에는, 무지개가 7가지 색깔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그 뒤로는 무지개를 발견하면 검지 손가락으로 헤아리며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색을 하나씩 찾아보곤 했다. 그렇게 7가지 색깔을 다 찾고 나면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프리즘을 통해 쏟아져 나온 빛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무지개는 몇 가지 색깔일까요?"
우리들의 '7가지'라는 대답에 선생님은 사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이 아니라고 하셨다. 문화나 시대에 따라 누군가는 더 적은 색깔의 개수로, 누군가는 더 많은 개수로도 나누어 본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 말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지개가 일곱 빛깔이라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인생의 대부분이 그랬던 것 같다. 만화 영화에서 미워하던 악당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악당이 아니기도 했고, 주민등록증이 나왔을 때도 '지금부터 나도 어른이다!'라기보단 '내가 벌써 어른이라고?'에 가까웠다. 이 세상에는 나누어 떨어지는 것보다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았는데, 시험관 과정 역시 그랬다.
이식 후 약 10일 정도가 지나면 채혈을 통해 '1차 임신 확인' 결과를 듣게 된다. '1차 임신 여부 확인'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의아함부터 들었다. 임신이면 임신이고, 비임신이면 비임신이지 1차는 뭐지? 2차도 있다는 건가? 싶었다. 이후 hCG**수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1차 피검사 때 hCG수치가 일정 수치 이상 나와야 임신 안정권이라고 했다.
hCG(β-hCG)** 란?
임신 시 태반이 될 조직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시험관 시술 후 혈액검사(첫 베타)로 임신 여부를 확인할 때 사용
검사 시기: 배반포(D5) 이식 후 9–12일, 분할기(D3) 이식 후 12–14일 전후.
수치 기준: <5 mIU/mL 음성, 5–25 mIU/mL 경계(재검 필요), ≥25 mIU/mL 양성.
(각 기준에 대한 판단은 의료진마다 상이함)
1차 혈액검사를 하기까지 10여 일간의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그 긴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얼리 임신테스트기로 확인을 해보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에겐 그럴 용기가 없었다. 혹시나 테스트 결과가 좋게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희망을 놓지 않고 남아있는 주사를 놓는 일이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난임 유튜브 채널에서 들은 의사의 경험담으로는, 종종 자가 테스트 결과가 비임신으로 나와 처방된 주사와 질정을 독단적으로 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야 임신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미 호르몬제를 끊어버린 뒤라 안타까운 결과로 끝났다고 했다. 나는 혹시라도 내 손에 의해 살아남을 수도 있었을 배아가 착상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열흘 동안 그저 처방된 주사를 투여하며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그 10일간의 기다림은 채취 후 이식을 기다리던 4일간의 기다림에 비하면 즐거운 시간이었다. 혹시나 착상했을지도 모를 아기를 생각하며 모든 행동에 조심을 기했다. 의자에 앉는 것도, 먹는 것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가끔은 혼자 배에 대고 '안녕?'하고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이 착상과 별 상관이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행동은 그랬다.
새벽 3시 35분. 잠에서 깼다. 병원 방문일이 되자 다시 불면이 시작되었다. 1시간 정도를 뒤척이다 소변이 마려웠다. 문득 임신테스트기가 생각났다.
'한 번 해봐. 어차피 오늘 병원 방문일이잖아. 자가 주사 남은 것도 없으니 이제 안 맞을 주사도 없고.'
스스로의 호기심에 정당성을 부여한 뒤, 남아있던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괜시래 남편이 깨진 않을까 안방 문을 흘긋 봤다. 손바닥만 한 분홍색 봉투 속에서 제습제와 함께 길쭉한 테스트기가 나왔다. 유효 기간이 임박해 있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흐른 걸까.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테스트기에 붉은 선이 나타났다.
선명한 한 줄.
그럴 줄 알았지. 기대도 안 했어. 시험관 1차 성공은 로또라잖아. 비염 심해도 약도 안 먹고 버텼는데 헛고생했네. 그냥 약 먹을 걸. 설마 재채기를 많이 해서 배에 무리가 간 건가? 그건 아니겠지? 됐어, 오히려 잘됐어. 못하고 있던 일 많았잖아. 다음 달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지내야지. 아, 병원 가기 싫다. 고생 고생해서 채취한 결과가 이렇게 허무하다니. 남은 배아도 없잖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다시 채취부터 해야 하는 건 정말 너무한 거 아냐?
밀려오는 속상함에 불만, 자책, 회피, 원망의 감정들을 한숨에 담아 속사포처럼 뱉어냈다. 이토록 감정이 널뛸 수 있다니. 자아가 분열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두 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가 보였다. 잠에서 깰 때마다 '임신 아니라니까.'라며 눈을 질끈 감았지만, 몇 번이나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피곤했고, 잠들고 싶었다.
'봐봐, 테스트기 두 줄은 꿈이야. 지금 이게 현실이고. 아까 진짜 테스트기 한 거 보면 이렇게 한 줄...'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새로운 줄이 테스트기의 대조선 옆에 보였다.
'설마... 임신인가?'
매직아이를 하듯 요리조리 테스트기를 돌려봤다. 헛것이 보이나 싶어 카메라로도 찍어서 화면으로도 확인해 봤다. 대조선에 비해 흐릿했지만 분명한 두 줄이었다.
검색을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임신일 수도 있고, 이식 후 맞고 있는 시험관 주사에 영향을 받아 두 줄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뭐야. 결국 병원 가서 피검사해 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 투정만 잔뜩 한 채 다시 잠을 청했다.
햇살에 눈을 떴다. 지각이다. 급하게 주사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대기가 언제까지일지 가늠도 안 왔다.
병원 도착 후, 채혈을 했다. 뛰어와서인지, 두 줄 때문인지 널뛰는 감정 속에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림이 가라앉을 만큼 오랜 기다림 뒤에야 내 이름이 불렸다. 멈춰있는 것 같던 심장은 진료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희망에 가득 차 의사 선생님 표정을 찬찬히 살폈지만, 선생님의 표정이 묘했다.
"... 수치가 25가 나왔어요. 50 이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10 이하를 비임신으로 봅니다. 10~50 사이는 조금 애매해요. 이틀 뒤 피검사를 다시 해서 결과를 봅시다. 지금보다 수치가 잘 늘어나면 긍정적인 거고, 수치가 잘 늘어나지 않으면... 그때는 또다시 알아봐야겠지요."
고개를 끄덕인 뒤 진료실을 나왔다. 이틀간 더 맞아야 할 주사와 질정을 처방받고 병원을 나섰다.
남편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여보, 오늘 병원 가서 확인하는 날이지요? 병원에서 별다른 얘긴 없고?"
나는 "임신인지 아닌지 아직 알 수 없대. 저녁에 얘기해 줄게요."라고 말했다. 남편도 더 이상 묻진 않았다.
임신이면 임신, 비임신이면 비임신이지 hCG 수치 25는 또 뭐람. 서른을 훌쩍 넘기고도 아직도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다. 이렇게 중요한 걸 왜 교육과정에는 편성을 안 하는 거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