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난포와 배아등급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 앞 문방구에는 뽑기 기계가 여러 대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전면에 반짝이는 보석 반지들이 큼지막하게 그려진 뽑기 통이었다. 학교를 다녀오는 길이면 늘 그 반지를 보면서 ‘엄마 손에 끼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엄마의 심부름을 한 뒤 용돈으로 500원을 받게 되었다. 문득 학교 앞에 놓여있던 뽑기 기계가 떠올랐다. 당시 다른 뽑기 기계들은 100~200원이었지만, 보석반지가 들어있던 뽑기 기계는 5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넣는 방식이었다.
나는 받아 든 동전을 쥐고 뽑기 기계를 향해 달려갔다. 내 도보로 20분 정도 되는 먼 거리였지만, 발걸음이 춤추듯 가벼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뽑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간절히 소원을 빌고 손잡이를 돌리면, 원하는 반지가 나올 줄 알았다. 꼭 쥐어 따뜻해진 동전을 뽑기 투입구에 넣고, 원하는 반지가 나오길 기도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도르륵-'
뽑기 통 덮개를 열자 빨간색과 투명색이 반씩 맞물린 커다란 캡슐이 나왔다. 투명한 쪽에 비친 뽑기 속 물건은 내가 원하던 보석 반지가 아닌, 쇠로 된 팽이였다. 당혹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던 나에게 옆에 있던 어떤 언니가 '뽑기란 원래 그런 거'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뽑기 통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때마다 손에서 비릿한 쇠 냄새가 났다. 그게 내 인생의 첫 뽑기였다.
채취 전 가장 두려웠던 것은 공난포**가 나오는 일이었다. 난포를 여러 개 채취할수록 정상 난포의 개수가 많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내 경우엔 보이던 난포가 4~5개뿐이라, 그중 1~2개만 공난포여도 비중이 컸다. 개수가 작다 보니 모두 공난포이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공난포**(Empty follicle) 정리
1) 뜻
- 난자 채취 때 초음파상 난포는 보이는데, 그 난포에서 난자가 나오지 않은 경우.
- 한두 개 정도의 공난포는 “흔한 일”이며, 전체 결과에 큰 문제는 아닐 수 있음.
- 드물게 거의/모든 난포에서 난자가 한 개도 안 나오는 경우를 “공난포 증후군(EFS)”이라고 부름.
2) 발생 이유
- 트리거 타이밍 문제: 성숙 주사(트리거) 후 채취까지 시간이 맞지 않으면 난자가 잘 안 나올 수 있음.
- 트리거 작동 문제: 주사 시간 착오, 용량/흡수 문제, 종류 차이 등.
- 성숙도 문제: 난포는 커 보이지만 안의 난자가 아직 덜 성숙한 경우.
- 시술/기술 차이: 흡인 압력·바늘 위치·세척(플러싱) 여부 등은 병원 프로토콜마다 다름.
3) 다음 주기 대처 예시(의사와 상의)
- 트리거-채취 간격 조정(개인화, 보통 34~36시간 기준에서 미세 조정).
- “더블 트리거”(hCG + GnRH agonist) 고려.
- 트리거 약 변경, 채취 시간 당기기/늦추기, 플러싱 적극 활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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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취 후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4개의 난포 채취에 성공했더라도, 모든 난포가 수정에 성공해 배아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성숙 난포의 수정 성공률은 60%~75% 정도라고 했다. 심지어 그러한 확률을 뚫고 수정된 배아에도 등급**이 있었다. 등급이 높다고 해서 꼭 임신이 되는 건 아니지만, 등급이 높을수록 착상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이렇게 끝도 없이 단계마다 확률싸움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 임신이라니. 그 모든 과정을 거쳐 태어날 '아기'라는 존재가 손에 닿지 않을 기적처럼 여겨졌다.
4일간의 시간은 생각처럼 잘 가지 않았다. 시간이 느리게 갈수록 불안은 점점 자라났다. 검색을 할수록 '나에게 주어진 난포의 개수로 성공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유튜브에서 시험관 VLOG에서 마주한 이야기 속 채취된 난포의 숫자들은 내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시험관 카페에 나의 상황에 대해 얘기할 때면 "난저**이신 거죠? 힘내세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 말은 위로였겠지만, 내가 불리한 상황에 있다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했다.
난저**: 난임 커뮤니티 약칭으로 과배란해도 회수되는 난자 수가 적은 상태.
월요일 채취 후, 재방문해야 하는 요일은 금요일이었다. 이식 전에 수정된 난포의 개수와 등급을 알려주는 병원도 있지만, 내가 다니던 병원은 이식 당일 내원하면 원장님을 통해 듣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미리 알게 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에게는 장점으로만 느껴지진 않았다.
배아 수나 등급이 최종 이식 가능 여부를 단정 지어주는 정보가 아니기도 하고, 애매한 결과를 듣게 되면 추측 속에서 감정이 요동칠 것 같았다. 검색 후 불안을 반복하던 나에게는 차라리 최종 결과를 한 번에 듣는 편이 마음을 다잡기 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검색을 멈췄다. 그리고 무겁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미뤄뒀던 집안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뽑기 기계 앞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꿈꾸던 유년시절처럼, 수많은 확률 속에서 다시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걸까. 그 끝이 보석 같은 반짝임일지, 또 다른 허무일지 두려웠다
배아 등급(Embryo grading) 정리
1) 배아 등급이란?
- 현미경으로 배아의 모양과 발달 정도를 보고,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순서”를 매기는 방법.
- 점수/등급은 “확률의 힌트”일뿐, 임신을 보장하지는 않음.
2) 언제 평가하나?
- 3일 배양(D3): ‘분할기’ 배아 평가.
- 5일 배양(D5~D6): ‘배반포’ 배아 평가(요즘 이식은 보통 배반포 기준이 많음).
- D는 채취 후 경과 일수.
3) 실제 이식 판단은 종합 평가
- 배아 등급 + PGT-A 결과 + 산모 나이 + 자궁내막 상태/타이밍 + 과거 이식 기록을 함께 봄.
- 등급 기준·표기법은 기관마다 다를 수 있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