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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 수의사 Mar 29. 2021

표범 직지

사람이 키운 맹수

동물원에는 직지와 표돌이라는 두 마리의 표범이 있다. 직지와 표돌이는 형제지만 성격은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예전부터 표범이 자생했었는데, 조선시대까지 큰 문제가 되었던 호환(虎患)의 대부분이 표범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표돌이의 야성적인 모습을 보면 옛사람들이 호환을 두려워한 이유가 짐작이 간다. 표돌이는 사육사가 철망의 구멍을 통해 주는 닭고기를 으르렁거리며 순식간에 낚아채간다. 방심하면 구멍으로 표돌이의 발이 나와 할퀼 수 있기에 사육사들은 표돌이 앞에서는 긴장을 놓지 않는다. 반면 직지는 성격이 온순하고 수의사인 나를 반기는 동물원의 유일한 맹수이기도 하다. 


2005년 맹수 사육사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어미 표범이 얼마 전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었는데 새끼 한 마리가 피를 흘린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디에 베였는지 오른쪽 다리가 많이 찢겨 있었다. 고민스러웠다. 그냥 놔두기에는 상처가 크고 치료를 위해서 사람의 손을 타기 시작하면 어미가 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어미에게서 떼어내 치료를 시작했고 어미 대신 사육사가 고양이 분유를 먹이는 인공포육을 시작했다. 두 시간마다 분유를 먹여야 하는 사육사의 밤은 길고 고단했다. 다행히 새끼 표범은 분유가 담긴 젖병을 빨았고 상처도 아물었다. 과거 호랑이 인공포육을 수차례 경험한 사육사는 호랑이에 비해 표범은 잘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새끼 표범이 이유식을 먹을 무렵, 연예인과 닮은 동물을 매칭해 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방송에 출연하기 전에 직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직지는 청주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에서 따왔다. 표범의 이름으로는 조금 생뚱맞지만 청주시에 소속된 우리 동물원은 동물을 통해 시정을 홍보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방송에 출연하자 직지는 곧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직지를 보러 동물원에 오는 관람객도 많았다. 직지의 인기가 높아지자, 동물원에서 가장 잘 보이는 별도의 공간에 직지를 두었다. 특별한 관심 속에 직지의 성장은 생각보다 빨랐고 안아보면 묵직함이 느껴졌다. 



직지는 낮 동안 관람객의 시선에 놓여 있다가 밤이 되면 잠을 자러 내실로 들어가곤 했다. 어느 날 담당 사육사가 쉬는 날이라 내가 대신 직지를 내실로 들여놓기로 했다. 무거워진 직지의 등 피부를 두 손으로 집어 올리자 놀란 직지는 나의 손목을 물고 말았다. 손목 안에서 직지의 날카로운 위아래 송곳니가 만났고 뚫린 구멍으로 움직이는 힘줄이 보였다. 본능으로 그런 것이지만 뭔가 잘못된 걸 느낀 직지는 내실로 도망갔다. 나도 병원에 실려 가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내 왼쪽 팔목에는 아직도 그때의 흉터가 있다. 예전에는 표범에게 물린 상처를 자랑삼아 보여주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동물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다.  


어린 직지를 길렀던 사육사도 어느덧 퇴직하고 어른 맹수가 된 직지는 전시장에서 철창이 견고한 좁은 사육장으로 옮겨졌다. ‘갇혔다’는 표현이 가슴 아프지만 정확하다.. 철창 사이로 내민 내 손이 반가워 얼굴을 비벼 보지만 그 이상은 다가갈 수 없다. 좁은 사육장에 홀로 남은 직지는 같은 장소를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정형 행동이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직지는 그 후로도 10년을 좁은 사육장에서 갇혀 지냈다. 2017년 직지의 정형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서로 떨어진 사육장 두 곳을 다리로 연결하여 직지의 활동반경을 넓혀주는 개선사업을 하였다. 1억이 조금 넘는 적은 예산이었지만 내가 동물원에 들어온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예산이기도 했다.

직지를 부르면 반대편 사육장의 통나무를 타고 올라 다리를 건너 나에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를 지나 성큼성큼 걸어오는 표범을 보고 탄성을 자아낸다. 다리에는 명패가 붙어있다 “하늘은 걷는 표범”. 다리 위에 앉아 있는 직지를 올려다보면 구름이 흘려가는 파란 하늘과 겹쳐 보인다.



자유롭게 갈 곳이 많아지자 정형 행동이 눈에 띄게 줄었고 가죽과 털에도 윤기가 흐른다. 잘 먹고 운동하니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 년에 한 번 맹수들은 건강검진을 위해 마취주사를 맞는다. 맹수들은 아픈 주사를 놓는 수의사를 무척 싫어한다. 그런 나를 유일하게 반기는 동물이 직지다. 직지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다른 수의사에게 주사를 부탁한다. 일이긴 하지만 동물들이 점점 나를 경계하고 화를 내는 것을 보는 일은 축적되어 은근히 마음의 상처가 된다. 동물에 대해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수의사로서 동물에게 감정을 섞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직지도 표돌이도 올해로 만 15살이 되었다. 동물 나이로는 노년에 접어든 셈이다. 얼마 전 사납기만 했던 표돌이가 무료한 지 나뭇가지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야생동물을 소유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 ‘귀엽다’는 표현을 자제하지만 장난치는 표돌이가 귀여웠다. 표돌이는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흠칫 놀라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맹수 본연의 야성적인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즐겁게 마저 놀기를 바라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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