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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 수의사 Mar 15. 2021

물새장 백로

동물원 백로 자연으로 가다




동물원 물새장에는 스물네 마리의 백로가 살고 있었다. 백로들은 평소엔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 때만 놀라서 물새장을 날았다. 물새장은 백로가 날아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꽤 큰 면적이었지만 물새장 철망을 들어 올리는 기둥이 하나라 높아질수록 좁아지는 원뿔형 공간이었다. 백로가 높이 날 때면 회전 공간이 작아 날개 끝이 철망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물새장 밖에도 백로들이 찾아왔다. 여름이면 눈 밝은 백로들이 물새장에 있는 친구들을 포착하고 근처 언덕으로 내려오곤 했다. 때로는 몇 달씩 물새장 옆 언덕에 머무르면서 백로 서식지를 방불케 했다. 

물새장 안팎의 백로들은 서로를 부러워하는 모양이었다. 야생 백로들은 사람들에게 먹이를 공급받는 사육 백로들이 부러운지 한참 동안 물새장 안쪽을 바라보곤 했다. 반면 물새장 안의 사육 백로들은 야생 백로처럼 나가서 자유롭게 날고 싶은 듯 물새장 안쪽에서 망을 잡고 집요하게 매달려 있기도 했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 싶어 하는 건 인간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동물원에 처음 백로가 오게 된 사연은 꽤 슬프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동물원은 그저 사람들이 놀러 와서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볼거리를 위해서 동물들의 희생이 요구되어도 지금처럼 비난을 크게 받지 않던 시기였다.

 그 무렵 지금의 물새장이 지어졌고 전시할 새의 종류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야생동물을 포획하여 파는 동물판매업자에게 백로 구입을 의뢰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판매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판매상은 청주의 한 야생 백로 서식지에 들어가 둥지가 있는 나무를 흔들었고 떨어지는 새끼 백로들을 주워 왔다고 했다. 떨어져서도 살아남은 새끼들은 동물원에 팔렸다. 다시 동물원의 좁은 새장에서 살아남은 새끼 백로들만이 물새장에 전시됐다. 시련은 계속되었다. 북풍이 몰아치는 산속 동물원의 겨울 추위는 여름 철새인 백로가 감당하기는 혹독했고 얼어 죽는 백로가 늘어났다. 동물원 직원들은 차가운 눈비와 바람을 피할 비닐하우스를 급하게 지어야 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새끼 백로들은 동상으로 발가락이 짧아졌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새끼 백로들도 성체가 되었다. 물새장이 만들어졌을 때 심었던 어린 나무들은 사람 키보다 훨씬 높게 자랐고 번식 적령기가 된 어린 백로들은 본능에 따라 나무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낳고 길러냈다.


백로가 동물원으로 온 지 20년이 흘렀다. 우리는 백로를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2020년 2월, 백로들을 살리기 위해 만들었던 비닐하우스를 이용해서 백로들을 포획하였다. 백로들은 방사가 가능한지 건강상태를 점검받았고 적절한 시기에 방사하기 위해 몇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물새장보다 작지만 재포획이 쉬운 새장으로 옮겨졌다. 백로들이 올라앉은 소나무는 5월이 와도 눈 덮인 듯 새하얬다. 영문을 모르는 백로들은 지급받은 미꾸라지를 재빨리 먹고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날씨가 화창한 5월 어느 날, 방사한 백로들을 알아볼 수 있게 개체 식별용 발목 가락지를 채웠다. 백로들을 한두 마리씩 종이 상자에 담아 싣고 충남 서산시 일원으로 출발했다.


백로들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서 방사지는 먹이가 풍부하고 포식자 등 위험요소가 적어야 했다. 황새 방사 경험이 많은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 박사가 방사지를 선정해 주었고 방사 당일에도 동행하였다. 방사지에 도착하여 주변 경관을 둘러보니 뒤로는 강이 흐르고 앞은 탁 트인 농경지였다. 백로가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산에는 나무도 높아서 백로가 앉아서 쉬거나 둥지를 만들기도 적당해 보였다. 




백로들을 담은 종이상자들을 차에서 내려 일렬로 정렬하였고 차례대로 상자를 열었다. 갑자기 밖이 환해지자 백로들은 순간 어쩔 줄 몰라했지만 이내 상자 위를 날아올랐다. 오월의 태양은 대지를 데웠고 열이 오른 대지는 상승기류를 만들어냈다. 날아오른 24마리의 백로들은 상승기류를 타고 회오리로 돌며 금세 구름 위로 올라갔다. 하얀 구름에 백로가 겹쳐져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 속 수증기만큼이나 가벼워질 수 있는 존재들이었는데 오랜 시간 무거운 철망에 눌려 앉아 있던 백로들에게 미안했다. 


시간이 지나서 백로들은 먹이를 찾아야 하는 고달픔에 동물원 생활을 그리워할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머릿속을 지워내고 가벼워진 백로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만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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