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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 수의사 Mar 26. 2021

애증의 동물원

동물원에서 일하는 이유

수의대를 졸업하고 야생동물 의학 대학원에 다니던 중 지도교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일본 교환교수로 가시게 되어 진로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마침 대학 동기가 호주에 있었는데 야생동물 분야가 앞선 나라라고 했다. 호주에 살아봐도 좋겠다 생각하고 무작정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시드니에 도착해서 대학원을 알아볼 요량으로 시드니대 수의대를 찾아갔다. 우연히 만난 홍콩 국적의 수의대 학생에게 학비를 물어보니 외국인은 자국민보다 2배가 비싸다고 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고 이민과 입학을 위해 세차 알바를 시작했다.

한국과 달리 호주에서는 호수로 물을 뿌려 세차할 수가 없었다. 하천오염을 막기 위한 일환이었다. 대신 세제 탄 물로 적신 수건으로 차량을 거품으로 닦아내고 젖은 수건으로 물기를 다시 훔쳐냈다. 일이 끝나고 하숙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하는 저녁은 즐거웠다. 밤에는 바다로 나가 와인을 마셨다. 단순한 육체노동이 머리를 맑게 했고 밤잠은 달았다. 그런 생활들이 10개월째 흐르고 있던 어느 날 수의대에 남아있던 대학 동기가 국제전화로 청주동물원에 수의사 자리를 났다고 알려왔다. 같이 있던 친구와 여러 날을 고민했지만 미루어 뒀던 야생동물 수의사의 꿈을 찾아 귀국했다.

그렇게 들어온 동물원에는 일을 가르쳐줄 선임 수의사도, 일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창고에 진료 테이블을 구해다 놓고 자료를 찾아 스스로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새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동물원에 들어왔다.  물새장에 전시될 홍학은 스페인 플라밍고 춤으로 유명한 유럽 홍학과 칠레 홍학, 쿠바 홍학, 꼬마 홍학 4종이었다. 다른 3종과 다르게 꼬마 홍학[Lesser Flamingo]은 동물원 개체가 아니라 아프리카 야생에서 직접 포획되어 먼 한국까지 온 것이었다. 

야생동물 수의사의 꿈을 꾸게 해 주었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경비행기에 연인 메릴 스트립을 태우고 야생동물 천국인 아프리카 평원을 날아가는 장면이 있다. 비행기 밑으로 수많은 분홍색 새들이 놀라 날아오르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동물원 일을 하면서 다시 본 영화 속의 그 새가 꼬마 홍학인 것을 알았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좁은 상자에 갇혀 며칠을 날아온 꼬마 홍학들 중 오자마자 일어서지 못하고 죽는 개체가 많았다. 당시 수입업체와의 계약사항에는 동물원의 귀책사유가 없는데 두 달 안에 홍학이 폐사한다면 다른 홍학으로 보내준다는 조항이 있었다.

수입업체는 동물원의 잘못을 확인할 수 없었고 계약대로 보상분의 홍학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폐사를 막지 못하면 끝이 없어 보였다. 주저앉는 홍학이 있으면 옆에 두고 지켜야 했다. 침낭도 샀고 아픈 홍학 옆에서 꼬박 밤을 새도 결과는 좋지 못했다. 홍학 한 마리 가격을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부담스러웠고 한계를 느껴 그만 둘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그때의 나는 새에 대해 잘 모르는 수의사였다.

새에 대해 전혀 모르고 무슨 치료가 가능했을까? 인터넷을 통해 새의 경정맥에 수액 놓는 법을 익히고 일어서지 못하는 홍학을 위해 치료용 의자를 만들기 위해 치료용 의자 사진을 찾았다. 각목으로 홍학의 다리 길이에 맞게 의자를 만들고 다리가 들어가는 구멍을 뚫어 일어서지 못하는 홍학을 앉혔다. 먹이를 먹지 않으니 수액을 놓아 탈수를 예방했다. 살아나는 홍학이 생기자 기운이 좀 났다.

동물원의 홍학들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지만 적응하는 과정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홍학은 바다의 부드러운 뻘에 사는 새로 연약한 발바닥을 지녔다. 홍학사의 거친 시멘트 바닥은 홍학 발바닥에 상처를 냈고, 상처를 통해 들어온 균들은 며칠 후 관절을 퉁퉁 붓게 만들 결국 일어서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사육사들과 함께 거친 바닥에 물렁한 고무 재질을 입혔고 상처가 생기는 홍학은 줄어들었다.

야생에서 포획한 동물은 어떤 질병이 있을지 몰라 검역을 철저하게 해야 되는데 담당 기관에서도 눈으로만 관찰하는 형식적인 검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폐사의 원인을 찾고 더 이상 홍학이 죽는 일이 없도록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그 당시 폐사한 홍학의 내장장 안은 처음 보는 기생충으로 가득했다. 홍학의 입에 구충제를 투여해야 했다. 홍학의 부리는 특이하다. 마치 주사기 안에 피스톤이 들어 있듯이 부리 안에 꽉 차는 혀가 들어있다. 혀를 당기면 부리 위에 뚫린 구멍으로 먹이를 빨아들이는 구강구조였다. 부리를 굳이 벌릴 필요가 없다 보니 부리를 열기가 힘들었다. 한 마리씩 안 벌어지는 부리를 벌려 혀 뒤쪽으로 구충제를 짜서 넣었다.

이렇게 새로운 한 종의 동물을 진료를 정립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그리 큰 규모가 아닌 청주 동물원에 그 당시 130종의 동물들이 있었고 대형 동물원은 몇 백종의 야생동물이 있다. 그래서 야생동물 진료는 도전의 연속이다. 야생동물 수의사들은 열정적으로 진료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많다. 아픈 동물이 발생하면 열심히 진료해도 폐사되는 경우가 많아 무력감에 자주 빠지게 된다. 어렵게 치료가 되면 그 과정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자기만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환자 동물들은 치료 중 고통을 받았으니 고맙다는 말 대신 으르렁거리거나 도망간다. 그래도 다시 내일 아픈 동물들을 감당하려는 이유는 야생동물 수의사가 아니면 살려보려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홍학을 포함한 새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물새장에 들어가서 가까이 보는 관람로를 없앴다. 대신 떨어진 곳에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높은 전망대를 설치하였다. 영화의 경비행기 속 주인공처럼 멀리 분홍색 홍학들이 보인다. 나는 아직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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