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라자일렌 May 05. 2021

레바논 이야기 1

다종교 국가에서 산다는 것, 레바논 시아파 이야기

  원래 부제를 '모자이크 국가에서 산다는 것'으로 하려고 했는데, 레바논을 모자이크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 언론밖에 없는 듯 해서 부득이 제목을 수정하였다. 구글에 Mosaic Country 혹은 Mosaic State라고 검색하면 주류 문화에 대한 동화를 전제하지 않은 캐나식의 다문화 정책을 가리키는 'Cultural Mosaic' 혹은 벽에다 하는 그 모자이크에 관한 웹페이지들만 주구장창 나온다.


 필자는 한국이 조만간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사회가 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유독 피씨해서가 아니다. 일단 미국식 매운맛 인종주의를 시전하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순하고 기본 치안 수준이 높다. 그렇다고 프랑스식 매운맛 세속주의(라이시떼)의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테러를 감수해가며 별 재미도 없는 무하마드 만평을 그려야 직성이 풀릴 만큼 표현의 자유나 풍자에 대한 요구치가 높은 나라도 아니다. 그러니 한국은 서로가 서로를 소 닭 쳐다보듯 하는 모델의 다문화 사회를 잉태하기에 최적의 국가라 할 수 있다.


솔직히 마크롱 입장에서는 한국 대통령 개꿀이란 생각밖에 안 들 것 같다


 혹자는 그러다 프랑스 꼴 날지 모른다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프랑스는 원래부터 그랬다. 아래 링크를 열어보면, 이슬람 원리주의의 대두 이전에도 별의별 정파들이 프랑스에 몰려와서 테러를 벌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어 국제적 주목도가 높으며 자유, 평등, 박애의 이미지로 일찍이 정치적 망명객들의 집결지가 되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terrorist_incidents_in_France


 애석하게도 레바논은 서로가 서로를 소 닭 쳐다보는 하는 모델의 다문화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요 근래 젠더갈등이 핫하다. 레바논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젠더가 네댓개쯤 되며 모든 분야에 강력한 할당제가 적용된다고 상상해 보자. 심지어 국회 의석마저도 젠더별로 분배된다!


 최근에 필자의 레바논 친구에게, 딱 한명 원하는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을 권리를 준다면 누구를 고르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마론 가톨릭 신자인데, 주저 없이 국회의장 Nabih Berry(레바논에서 국회의장 자리는 시아파에게 할당된다)를 골랐다. 또한 그녀는 헤즈볼라(시아파 원내정당이자 무장조직)를 지독하게 싫어했다.


필자가 레바논 수르(티레)에서 촬영한 사진

 위 사진의 왼쪽에 있는 것은 시아파 정당인 아말 운동(Amal Movement)의 포스터이다. 제일 왼쪽부터 Nabih Berry, Abdel Hussein Sharafeddin, Musa Sadr이며, 그 오른쪽 포스터에 있는 것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이다.


필자가 Nabatiye에서 촬영한 헤즈볼라 프로파간다

 아말 운동과 함께 시아파 양대 정당인 헤즈볼라 역시 마찬가지인데, 레바논 남부의 나바티예같이 헤즈볼라 지지세가 강한 곳에 가면 헤즈볼라 대빵인 하산 나스룰라와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사진을 나란히 박아넣은 프로파간다를 숱하게 볼 수 있다. 원내정당 공보물에 남의 나라 국가원수를 떡하니 박아넣을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레바논 시아파에게는 국가에 대한 소속감보다는 종파에 대한 소속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함을 시사한다. 왜 적어도라는 말을 붙였냐 하면 다른 정파들은 그래도 자기네 스폰서 사진을 정당 공보물에 대문짝만하게 박아놓지는 않기 때문이다.



 헤즈볼라 본거지인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에 가면 헤즈볼라 무명용사 공동묘지가 있는데, 그 입구에는 호메이니 사진이 대문짝 만하게 박혀 있다. 그 아래에 적혀 있는 문구는 '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순교자의 땅을 주소서'라는 뜻인데, 좌측 아래에 '이맘 하메네이'라고 적혀 있는 것 봐서는 하메네이가 한 말인 것 같다. 심지어 라픽 하리리 국제공항과 베이루트 시내를 잇는 두 간선도로에는 각각 하페즈 알아사드(현 대통령인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로, 대충 시리아 버전 김일성)와 '이맘' 호메이니의 이름이 붙어 있다.


 사실 이쯤되면 레바논 시아파는 한국 기준으로는 이란 끄나풀 취급 받아도 할 말이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 다른 정파들한테 곧잘 그런 취급을 받고는 한다. 앞서 말한 마론파 카톨릭 친구가 한국에 크리스피 크림이 있는 것을 부러워 하길래, 장난으로 Nabih Berry한테 레바논에도 하나 도입하게 하라는 말을 건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Nabih Berry라면 크리스피 크림은 개뿔 어디서 X같은 이란 도넛만 공수해올 것이라고 받아쳤다.  


 

 심지어 아말 운동 설립자인 Musa Sadr( 사진 가운데 포스터의 터번  사람) 아예 이란인이다. 그는 레바논의 정치적, 경제적 주변부인 시아파의 목소리를 결집하고  이익을 옹호하는데 힘을 쏟았다. 다만 페르시아어 위성방송 채널 Manoto에서 방송한 하기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는 호메이니의 벨라야테 파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반대했던  같다. (벨라야테 파기란  이란 이슬람공화국 정체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으로, 시아파 성직자가 세속권력까지  해먹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이다.)


-2편에 계속-


https://www.youtube.com/watch?v=RnJmb7VA_IE





 

 


 


작가의 이전글 페르시아어, 타지크어, 다리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