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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Jan 28. 2024

즐거운 ‘우리’ 집을 꿈꾸며 – 여자들만의 셰어하우스

충북여성재단 2023 충북청년성평등네트워크지원사업



2023. 11. 10 최종 수정

충북여성재단 2023 충북청년성평등네트워크지원사업

충북여성재단 성평등 기자단 ‘나비단’

나은진 작가







#1. 9년 째 장성 중인 모임 ‘소나무’


나에게는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모임이 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창작 동아리로 시작한 모임은 친목 모임으로 변질되면서 지금은 열 명의 인원으로 고정되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소나무’. 소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자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사는 곳도 나이도 제각각인 여자들이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꾸준히 소통을 이어온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아는 지인을 넘어서서 동거인이 되고자 마음 먹었다. 무려 열 명의 여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라니! 언뜻 보면 현실성 없는 소리지만 우리 소나무는 항상 진심전력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단순히 꿈 꾸고 계획해보는 것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상대적으로 도심과 떨어진 조금 한적한 곳에 빌라를 하나 얻어서, 주거 공간과 공유 공간을 분리해 함께 살아갈 집을 만들자. 열 명 중 한 명쯤은 경제적으로 성공하거나 열 사람이 힘을 합쳐 모으면 건물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들. 이 글은 그것들을 모아 일구어낸 이야기다.


 



#2. 왜 ‘우리’는 같이 살고 싶어 할까


9년 차라고 해도 가까운 곳에서 얼굴 보고 사는 친구들과는 엄연히 다른 ‘지인’. 그런 우리가 왜 같이 살고 싶어 할까?



친구와 룸메이트가 되어 같이 살고 싶다는 꿈은 누구나 꿔본 적 있겠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내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이 친구와 같이 살면 분명 싸우게 될 거라고 대답한 바 있고, 공동명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셋 이상의 친구들과 살려면 서로 간의 협의가 필요할 테니까. 그 외 전셋집 구하기, 공과금 나누기 등등 모든 문제에 돈이 들어가면 복잡한 게 많아진다.



적당히 선을 그으면서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사적으로 너무 가까운 관계는 사소한 ‘NO' 라는 대답 하나도 말하지 못하다가 쌓이는 설움이 있다. 본인 의견을 뚜렷하게 드러내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관계. 그러나 적당히 거리를 두는 집단이 나에게는 ’소나무‘ 모임이었다. 서로의 대화 방식, 생활 패턴,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느낀 감상이다.



단순히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어서 살고 싶은 거라면 세상에는 수많은 모범 사례가 존재한다. 우리가 인원이 좀 많아서 그렇지. 그런데 그들이 다 ‘여자’라면,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비혼주의자’들이라면 의미는 달라진다. 우리에게는 여성들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노후를 보내면서, 동시에 안전을 추구할 수 있는.



여전히 벗어나기 힘든 가부장제, 급여 수준과 사회 통념에서 나타나는 성적 불평등, 사회적 약자라고 말하지만 대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 혐오 범죄, 무엇보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남’ 덕분에 우리는 비혼을 선택했다. 언제 데이트 폭력으로 목숨을 위협당할지 모르는데 목숨을 저울질하면서까지 연애하고 싶지 않고,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한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혼자 사는 건 위험하고 외롭다. 비교적 지금보다 안정적인 미래를 구축하려면 동반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비슷한 상황에 처한 또래 여자들이 있다. 게다가 무려 9년이나 인연을 맺어온,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편한 사이다. 그렇다, 그때부터 창작 동아리 ‘소나무’는 여성 친목 모임 ‘소나무’가 되었다.




#3. ‘소나무 빌라’를 소개 합니다


튼튼한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각자의 개인 공간, 수면과 취미 생활을 취할 수 있는 적어도 6평 이상의 방. 개인 공간을 지나 공유 공간으로 향하는 복도의 선반과 책장에는 각자의 취향이 담긴 도서가 꽂혀있다. 커다란 거실로 들어가면 보이는 안락한 소파와 TV, 그리고 안마의자. 북유럽 스타일의 주방에는 빌트인 오븐과 식기세척기를 두어 싱크대 크기를 넉넉하게 잡는다. 조금 더 여유가 된다면 거실 옆에 공유오피스 작업실까지 만들어두면 금상첨화.



무려 열 명이라는 인원이 한 집에서 살아가려면 가족 규칙은 필수다. 집안일이 밀리지 않도록 일별로 역할을 정하고 매달 한 번씩은 가족 회의를 열어 건의 사항을 논의한다. 조율하는 과정에서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할 것. 벌레? 세스코가 잡아줄 거다. 보안? 캡스 경비도 설치하자.



집의 위치? 1순위는 청주, 2순위는 경기도. (순전히 내 희망사항이다) 수도권은 집값도 비싼 데다가 너무 복작복작하고, 청주가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니 지역도 딱 알맞다. 인프라도 ‘지방’치고는 우수하니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괜찮은 매물이나 눈여겨 봐야겠다.



우리끼리의 대화를 통해 합의한 셰어하우스 구성의 일부다. 일명 ‘소나무 빌라 건립작전’. 수십 년이 흐른 중노년에서야 이루어질 ‘내 집 마련’ 아닌 ‘우리 집 마련’ 이야기니 계획을 실현하기까진 긴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훗날에는 열 명이 아니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러나 확실한 건, ‘같이 살고 싶은 사이’라고 느끼는 마음은 같다는 거다.





#4. 비혼 여성들에겐 그들만의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왜 ‘여자’들만 모여 사냐고? 내가 묻고 싶다. 여자들끼리 사는 게 뭐가 어떻다고.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게 개인의 자유이듯이 이것 역시 우리의 선택이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이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고, 집 안에서 남들 눈치 안 보고 속옷 벗어 던지고 싶은 여자들이 합심해서 만든 결론.


“우리, 결혼하지 말고 같이 살자!”



비혼 여성들에게도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고, 운 좋게도 우리는 그 커뮤니티를 좀 더 일찍 찾았을 뿐이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지금도 오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함축한 대화의 결말은 이렇다. 우리,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은퇴 후에도 꾸준히 소통하고 생활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면서 안전과 인프라를 동시에 잡아야 할 것.



여자들은 왜 혼자 살고 싶어 할까. 혹은 왜 여자끼리 같이 살고 싶어 할까. ‘비혼’과 ‘1인 가구’ 세대가 늘어나는 요즘, 그 질문을 이젠 사회에게 던져본다. 



미래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든 우리 소나무 모임은 내년에도 건재할 테다. 10주년을 넘어서 수십 년이 지난 노년에도 함께 백발노인인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을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친다.







2023년 충북여성재단 충북 청년 성평등 네트워크 지원사업
성평등 기자단 '나비단' 기사집에 수록한 칼럼입니다.
기사집 PDF본은 본 링크에서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cbwf.re.kr/home/sub.php?menukey=596&mod=view&no=3991&scode=9999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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