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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Oct 12. 2023

풍경을 빌려온 정원 '석파정'

서울미술관 + 석파정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1길 4-1)


과거 조선왕조 후기의 강력한 권력을 등에 업은 존재가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 후기의 조선을 개혁하려 했던 인물 흥선대원군. 그의 모습은 쇄국령을 내린 보수파, 정치적 해결과제를 위해 실천하려던 인물, 고종의 아버지 등의 여러 이미지가 역사책에 섞여 나온다. 하지만 그의 역사만이 남겨진 것은 아니다. 그가 남겨두었던 정원 석파정은 역사 속에서는 유명세를 떨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석파정이 가진 고유의 정원으로서의 표현과 운치는 여전히 부암동을 지나가는 길목에서 가장 큰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조선의 정원은 화려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고풍스럽다. 자연을 등지고 풍경을 빌려왔다. 즉, 정원의 품위는  자연을 끌어오는 멋을 구축하는 태도에 달려있었다. 그래서 조선의 정원은 풍류를 위한 공간이자 자연의 기풍을 빌리기 위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화려한 건축물을 세우기보다는 자연 속에 스며들어 곧 자연 속에 맞추어 가는 것이 일품이라고 본다. 이러한 건축의 특징은 각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정원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그 특유의 멋을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중국의 정원은 화려하다. 인위적인 호수와 나무들의 빼곡한 숲을 사이에 두고 세워진 거대한 정자 혹은 별채는 정원을 소유한 이의 권위를 보여준다. 상하이의 정원 ‘예원’은 언제나 화려하며 사시사철을 품은 자연의 순간을 인간이 소유한 것 같은 장관이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멋보다는 화려함에 보는 눈이 즐겁다가도 쉽게 질리기도 한다. 일본의 정원은 어떠한가 소박하면서도 단조롭게 정원의 품격과 질서 정연함에 마치 그림의 한 폭을 담아낸 것 같은 순간의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교토의 오하라 지역에 유명한 정원 ‘산젠인’은 사계절마다의 멋이 담겨있어 액자에 담긴 그림과도 같지만 그 멋이 비슷하고 단조로워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우리나라의 정원이 아름답다는 것은 아니다. 화려함도, 질서 정연함도 없는 특징인 조선의 정원은 산을 등지고, 자연의 풍경을 빌려오지만 그것은 보는 이의 장소와 순간의 구조에 따르는 것이므로 보지 못한다면 정원의 가치로서는 유용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석파정을 비롯한 여럿 조선의 정원을 찾다 보면 보이는 멋에 따라, 계절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 반복적으로 찾는 경우가 있어서 그럴까? 타국의 정원에 비해 그 멋을 즐기는 빈도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타국을 갈 때마다 가지 못하는 한계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멋이라는 것을 멀리서 비교하기보다는 가까운 것을 찾는다. 그런 멋을 기반으로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습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부암동에 위치한 석파정의 산책은 꽤나 힘들다. 서울의 강북 지역 중에서도 최 북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외진 지역인 만큼 석파정이라는 정원을 위해 떠나는 여정을 고되다. 그러나 부암동의 멋을 알고, 석파정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현실을 무릎 쓰고도 다녀갈 만한 곳이다. 나는 그 멋을 찾아 떠나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본인이 5대 궁궐을 보며 사람에게 치이거나 더 이상의 멋을 느끼지 못할 때 한 번은 선택을 해보기를 바란다. 



서울미술관의 신비로운 복도를 거쳐 4층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만약 당신이 여름에 도착한다면 초록빛과 햇살의 싱그러움이 당신을 마주할 것이다. 가을이라면 단풍과 함께 뒤에 보이는 산의 풍경이 나를 감싸 풍경을 뒤로하여 단풍의 멋을 실감할 것이다. 겨울의 순간은 뼈대만 남은 나뭇가지들이 앙상하게 남았지만 쓸쓸히 보이는 풍경에 감정이 동요될 것이다. 봄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당신은 알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기에 망설이고 있는 당신이여 떠나라. 서울의 최북단 흥선대원군의 정원으로 그 멋을 따라 가보라. 궁궐너머의 보이는 웅장하고도 화려한 멋과는 달라 보여도 소박한 정원의 풍경이 당신 앞에 마주하였을 때 그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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