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빈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아프리카 말라위를 25일간(6월 24일-7월 19일) 다녀왔다. 호주 빅토리아주 장로교단에 속한 9개 교회의 16명이 한 팀을 이룬 선교여행이었다. 치추와 현지 언어로 번역된 8천 권의 성경책을 말라위 전역에 있는 가난한 교회의 교인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지난 20여 년간 설립하고 후원한 학교들과 군부대 여성지원 센터 등등을 탐방하는 것들이 부목적이었다.
21살부터 82세에 이르는 나이도 경력도 배경도 다양한 팀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줌으로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언어와 문화도 공부하고 먼저 다녀온 이들의 경험도 들으면서 차분히 여행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그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셀렘과 감사, 혼란과 적응, 가슴에 꽉 차 남을 기쁨과 추억이 가득 한 놀라운 시간들로 채워졌다. 두 눈이 번쩍 뜨였던 그 시간들을 마음 가는 대로 나누어볼까 한다.
아프리카, 낯선 대륙이다. 말라위, 이름만 들어본 세계 최빈국이다. 면적은 남한과 비슷, 인구는 2천만, 기독인 77%.. 여러 자료를 찾아 공부를 했지만 발을 디디기까지 그 나라를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세운 나의 여행 기록들은 어떤 것들일까?
호주 정부가 이 지역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권장하는 예방 접종 리스트를 뽑아보니 10가지가 넘었다. 말라리아 황열병 콜레라 장티푸스 간염 파상풍 광견병 예방 백신... 낯섦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팀원들은 각자의 건강 상태에 맞게 몇 가지씩 주사를 맞는 듯했다.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하니 말라리아는 시즌이 아니라 하고 콜레라는 물(마시는 물은 물론이고 양치질까지 생수를 썼다.)을 조심하면 된다 하고.. 그렇게 하나씩 맞지 않아도 될듯한 주사를 지워 나갔더니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아무런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여행을 마쳤다. 예방 접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접종을 하고도 배앓이를 하는 이들도 있으니 각자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나는 짐을 작고 가볍게 잘 싸는 특기가 있는데 이번 여행에선 온갖 짐을 다 쌌다. 항공사에서도 빈국의 물자가 부족함을 이해해서인지 수하물울 1인당 46킬로까지 허용했다. 4개의 대형 트렁크에 92킬로의 짐을 이민 가듯이 꽉꽉 채웠다. 의료시설이 열악하다 하니 설사약 두통제등 평소 먹지도 않는 비상약과 의료품까지 구비했다. 한식 없어도 잘 살고 현지 음식을 기본으로 먹는 게 나의 여행 철칙이었지만 도대체 뭐가 나올지 상상이 안돼(이들은 쥐도 먹는다.) 라면에 미니 전기냄비까지 챙겼다. 오트밀, 윗빅스, 커피, 말린 과일, 비스켓 등등 전쟁통에나 챙길 듯한 비상식량들을 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누어 줄 선물들이 짐의 대분분이었다. 거창할 것 없는, 아들이 어린 시절 읽던 그림책, 학용품, 스포츠 용품과 집에서 안 쓰는 자잘한 중고 생활용품들이었다.
여행 중 입던 옷들도 다 나눠주고 트렁크조차도 학교에 기부하고 한 개의 트렁크에 11킬로의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하찮은 선물을 받고 무릎을 절로 굽히며 눈이 촉촉해지기까지 하던 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나 마음이 아프다.
비행기를 3번 탔다. 멜번-->싱가폴(7시간) -->이디오피아(9시간) -->말라위 제2의 도시 블렌타야(6시간). 집에서 공항까지 달린 시간, 비행기를 갈아타며 기다린 시간,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여 숙소에 도착한 시간을 합하니 무려 40시간에 달했다.
일행 중 한 명의 티켓팅이 하루 다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멜번 공항에서 출발 전 발견하고부터 생쇼가 이어졌지만(그는 하루 늦게 비행기를 탔다. 상상하기 어려운 여행사의 실수 ㅠㅠ) 싱가폴을 거쳐 이디오피아에 내린 일행은 피곤을 잊고 생기발랄했다. 이른 아침이니 커피나 한잔 마시자고 해 공항 구석의 카페를 갔다. 인원이 많으니 테이블을 몇 개 붙여 달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서빙을 하는 이들 간에 대혼란이 벌어졌다. 테이블마다 서빙하고 수수료를 받는 직원들이 각각 배정되어 있다는 것과 어떤 테이블은 커피만 마셔도 되고 어떤 테이블은 음식까지 주문해야 하는 다른 조건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파악했다. 비행기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내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자 크로아상과 감자튀김(놀랍게도 말라위에서 아침으로 매일 먹었다.)까지 몇 접시 시켰다. 아프리카를 20년간 수도 없이 다녀온 70대의 리더분께서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활짝 웃으시며 말했다. "팀원들이여, 아프리카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 인생 뭐 별거냐. 뭐가 됐든 이디오피아에 왔으니 이디오피아 커피나 마셔보자.'
뜨겁고 진한 커피는 훌륭했고 잠이 확 깼다.
말라위로 가는 작은 비행기를 타다. 모잠비크에서 일한다는 방글라데시 변호사가 옆자리에 탔다. NGO 구호단체나 선교단체도 있고 비지니스를 목적으로 하는 중국인들도 있고 모잠비크 케냐 등등 다양한 국적의 아프리카인들이 탑승했다.
그렇게 다시 6시간을 날아 도착한 블랜타야 공항은 놀랄 만큼 초라했다. 작고 낡은 2충 건물은 유리창이 깨져 비닐로 땜빵을 해놓기도 했다. 작은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몇몇 직원들이 달려들어 뭔가를 체크하는데 누구는 유니폼을 입었고 누구는 사복을 입어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기 어려웠다. 누구는 여권을 보자 하고 누구는 발열을 체크하고 누군가는 돈을 달라고 속삭였다. 그런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공항에서 유니폼을 입고 서슴없이 당당하게?? 입국 비자를 받고자 지불한 미국 달러는 직원의 바지 뒷주머니로 들어갔다. 금고가 원래 없는 건가? 뒤죽박죽, 엉망진창, 난리법석..
어찌어찌 절차를 마치고 나오니 리더의 지인인 현지 목사님께서 마중 나와 계셨다. 그 옆에 여러 명의 남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돈을 달라 짐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지인의 일행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인은 지인이고 나머지는 공항 근처의 짐꾼들이었다. 누가 지인이고 누가 짐꾼인지 파악을 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지인은 왜 짐꾼들의 호객행위를 막지 않았을까? 이런 일들은 이후에도 이어졌고 그들의 문화인 듯도 했다. 우리 일행의 어려움을 모르는 척하는 듯 해 야속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살기 어려운 동포들의 생업의 기회를 야박하게 뺏지 않는 인심쯤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듯했다.
그래, 외국인은 봉이다. (계속)